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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Feb 25. 2021

즐겁고 의미 있는 일

직장 동료가 은퇴를 선언했다.

직장 동료가 은퇴를 선언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경험이 풍부하고 배울 점이 많은 이 동료 덕분에 내가 휴직을 하고 제주에 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시작해 놓고 채 마치지 못한 프로젝트의 뒷마무리를 맡아 준 이 고마운 동료는 우리 가족이 제주에 머무는 동안 직장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동료와 내가 무한히 신뢰하고 존경하던 우리의 상사가 은퇴를 했고 코로나로 인한 예산 삭감으로 인해 계획했던 혁신적인 프로젝트들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존경하는 상사와 마음 맞는 동료의 은퇴로 말미암아 그동안 운 좋게도 참으로 신나고 만족스러웠던 나의 직장 생활이 복귀한 후에도 계속 즐거울지가 불투명해졌다.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승진의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말은 귓등으로 들렸다. 생각이 참으로 많아졌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제주에서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면서 매우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제주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사실 이미 여러 번 했었다. 그렇지만 이방인이 아닌 생활인으로 산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진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제주가 아니라 미국이든 서울이든 어디에서건 지금처럼 매일매일 꼭 해야 하는 일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면 이만큼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제주 살이가 행복한 것일까 나무늘보 살이가 행복한 것일까? 지금까지는 이 둘이 구분되어 본 적이 없으니 어느 쪽인지 알 길이 없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아마 정답은 둘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지금처럼 강하게 들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합이 맞는 상사와 동료의 연이은 은퇴가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이쪽과 저쪽의 행복의 무게를 재는 내 마음속 저울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이쪽으로 기울고 있다.


어쩌면 남편의 건강상 위기를 겪으면서 어느새 돈이나 명예가 아닌 건강과 행복이 삶의 우선 가치가 되어버린 우리 가족에겐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직장으로 돌아가서 행복할지가 불투명해진 지금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아마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의 속마음은 제주에 계속 사는 걸로 이미 결정을 내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삶이 내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삶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 역시 그저 맡기고 따라가면 되는 건가 보다. 생각이 잠시 멈추었다.


만약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일이라는 것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이기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동안 제주가 가르쳐준 것들 탓이다. 제주는 내게 치렁치렁 매달려 있는 미련의 껍데기를 벗고 바다에 몸을 홀홀 내던지는 해녀 같은 삶을 살라한다. 지금의 이 행복한 마음을 계속 간직하면서 욕심 없이 살라고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소리를 통해 내게 속삭인다. 지금 내 마음속에 가득 찬 사랑을 나누며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세찬 바람소리로 노래한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라니… 도대체 어떤 일이 될 수 있을까. 잠시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미국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산후조리를 해 주셨던 순자 이모님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나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순자 이모님께서 이미 8년 전에 해 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자 이모님은 입주 산후조리사셨다. 출산과 큰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무척 예민해 있던 나를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보듬어 주셨던 이모님은 늦은 나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신 지긋한 나이의 아주머니셨다. 나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지극한 보살핌을 생전 처음 보는 남이었던 순자 이모님께 받았었다. 그 지극한 보살핌에 몸도 마음도 조금 회복이 되어 마침내 내가 내 몸과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우리를 돌봐 주시던 순자 이모님의 모습을 돌아보았을 때 예전에 시어머니 병시중을 10년 넘게 하셨었다는 그분의 고단했을 삶에 마음이 쓰였었다. 순자 이모님이 밤늦게까지 아기를 함께 돌봐 주신 덕에 몸을 조금 회복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이 든 이모님의 어려움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순자 이모님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입주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힘드시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모님께서 대답하셨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좋아. 이 얼마나 귀하고 어여쁜 생명이야.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이 순수한 영혼들을 돌보는 것은 나의 기쁨이고 내 삶의 축복이야. 그리고 나는 나로 인해 산모가 회복해서 힘을 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 난 내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야. 사실 내가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아서 이 일을 하는 거야. 나는 이렇게 즐겁고 의미 있고 중요한 일에 내가 쓰이는 것이 좋아.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서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해.”


순자 이모님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었던 게다. 이모님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내가 하는 일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 말씀하셨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쓰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마치 순자 이모님이 8년 후에 내가 고민할 내용을 아시고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내 마음속에 심어 두신 것 같았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 거창한  아닐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이런 순자 이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읽었다.  분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일이 어떤 일이건 자신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을 하면 그것이 귀한 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떤 일이든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일이 없지 않을까. 어떤 직업이든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하는지는 그다지 중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가  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지는 여전히 모른다. 아마도 삶이 그것을 가져와 줄 것이다. 이제껏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순자 이모님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단단히 붙잡고 살아가는 게 다 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8년 전에 순자 이모님이 내 마음속에 심어주신 그 씨앗을 소중히 여기고 키워나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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