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살기 힘들지 연재를 시작하며
글을 쓰지 않은지 2년 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 늘보는 왜 다시 글을 쓰는가?
약 2년 전 제주에서 살 때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흘러나오는 글들을 매일매일 열심히 쓰던 때가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마음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글을 받아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의 치열하고 바쁜 생활을 접고 제주에서 매일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유유자적 살고 있었는데 여유 있고 행복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글을 쓰는 일은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편안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던 글들이 어느 날부터 흘러나오기를 멈추었다. 흘러나오는 글을 쓰는 방법밖에는 몰랐던 나는 그 후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었다.
글쓰기가 고비를 맞이한 것은 출판을 고려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책의 목차를 짜고 어떤 주제로 어떤 에세이의 내용을 쓰자고 한 때부터 그토록 쉽게 느껴졌던 글쓰기가 갑자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제주 생활의 행복과 감동을 글로 옳기는 일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결국 나의 기쁨을 위해 글쓰기를 시작한 셈이었다. 그런 나에게 출판사 사장님이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글에서 무엇을 얻어 갈 수 있을까 질문했을 때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어서 선뜻 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글쓰기를 통해 행복을 나누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어야 하나 반문했던 기억도 난다. 그냥 흘러나온 이대로 출판하면 안 될까 고집 피우는 마음이 올라왔던 기억도, 순수했던 글쓰기가 어느새 출판이 목적이 되고 나를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구나 나에게 실망했던 기억도 난다. 나를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글은 쓸 필요가 없다 스스로에게 엄격했었다. 사실 그렇게 어지러워진 마음으로는 더 이상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다.
그런 늘보가 지금 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는가? 제주에 있을 때 만났던 한 블로그 친구의 말 때문이다. 그녀의 말이 지난 2년 내내, 그리고 여직까지도 마음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힘을 빼고 산다는 나의 말을 들은 그녀가 말했다. “늘보님, 저는 왜 이렇게 힘 빼고 살기가 힘들까요?"
말문을 잃었었다. 나 역시 그랬었지. 힘 빼고 살기가 죽기보다 힘든 때가 있었지. 내가 어떻게 힘을 빼고 살게 되었더라? 힘을 빼고 사는 지금 행복한데, 분명 힘 꽉 주고 살던 예전의 나는 그렇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더라?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 같다.
2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힘을 빼고 살게 되는 건지. 흘러나오던 글이 왜 완전히 멈추어 버렸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힘이 빠지게 되었는지. 앞으로 쓰는 글은 내가 힘을 빼게 된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쓰는 글들이 될 것이다. 예전에 쓴 글이 나를 위한 글이었다면 지금부터 쓰는 글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인 남을 위한 글이 될 것이다.
글을 다시 쓰고자 마음을 먹자마자 글쓰기 선생님과 글쓰기 모임이 나타났다. 나는 삶이 신호를 줄 때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리하여 주저하지 않고 매일매일 글쓰기 모임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힘 빼고 살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나의 마음이 평온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삶이 꼭 필요한 것들을 가장 적절한 때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의 의지가 박약하면 남의 의지를 나눠 쓰면 된다. 나의 재주가 부족하면 남의 재주를 보고 배워 쓰면 될 것이다. 나의 경험이 부족하면 남의 경험에서 얻어 배울 것이다. 나의 시선이 좁다면 남의 시선을 함께 빌어 쓰리라. 어차피 나와 남은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깊고 가장 진실한 곳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던가. 나 혼자라는 생각,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만 내려놓으면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조력자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지지자가 된다.
함께 쓰는 앞으로의 글들이 인연 지어져 읽는 이들에게 따스함으로 가 닿기를. 너무 힘들 때 힘 빼도 된다고 위로 줄 수 있기를. 진실한 내면의 꿈을 찾는 과정에 용기를 더해 줄 수 있기를. 삶이 무료할 때 일상의 기적과 보물을 알아보게 해주는 반짝이는 햇볕이 되어 주기를. 기적처럼 당신의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펼쳐지는 것을 목도하는 그 길에 함께하는 벗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