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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Nov 10. 2023

우연히 행복을 발견한 날

The day I stumbled upon happiness


오늘 여러분께 8년 전 특별한 한 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날이 특별한 이유는 그날 이후로 제 삶의 방향이 180도 변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나이 마흔을 경계 삼아 두 가지 삶을 산 것 같습니다. 그날까지의 삶과 그날 이후의 삶. 힘을 잔뜩 주고 사는 삶과 힘을 빼고 사는 삶.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께 제 삶에서 힘을 빠지기 시작한 그날, 그때의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당시 저는 미국 워싱턴 디씨 근교에 살며 남편과 두 살 네 살 아들 둘을 키우는 바쁜 직장인 엄마였습니다. 남편은 메릴랜드 대학교 산하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한 시간 거리에 떨어진 미 국무부 산하의 외국어 학교에서 외교관들의 학습을 상담하고 선생님들에게 교수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중산층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이 참 뻔한 생활입니다. 학군 좋은 동네에 감당하기 빠듯한 집을 모기지 잔뜩 주고 사서는 매달 모기지 이자 갚는다고 바빴습니다. 아이들을 리뷰가 제일 좋다는 비싼 데이케어에 보내는 것으로 하루 종일 남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직장인 엄마의 죄책감을 덜었습니다. 남편은 연구소 부소장으로 벌이가 꽤 좋았습니다. 남편의 직장과 벌이를 지키기 위해서 멀리 다른 주에 있는 대학의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집 근처에서 직장을 구한 저는 여전히 학계로 돌아갈 기회가 없을까 호시탐탐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부터 남편과 부지런히 부동산에 대해 알아보고 투자 워크숍까지 참가했던 덕에 살고 있는 집 말고도 세를 줘서 모기지를 충당하는 집과 콘도가 세 채나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 어찌어찌 남의 손을 빌려 키우다 보면 우리가 은퇴할 즈음에는 모기지를 다 갚은 집 네 채가 노후 대책이 될 터였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경제적인 자유가 약 20년쯤 후에는 이루어져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꼼꼼한 완벽주의자 남편은 집 네 채를 관리하느라 자주 스트레스를 호소했지만 그 정도 노력도 안 하고 어찌 편안한 노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스스로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크게 미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분주하게 생활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워싱턴 디씨지역에 폭설이 내렸던 날의 다음 날  



그날은 워싱턴 디씨 지역에 폭설이 내려 온 가족이 집에 갇혀 있던 날이었습니다. 온 동네가 두꺼운 눈 이불로 덮여 하얗고 포근하던 그날, 평소 장식처럼 보기만 하고 잘 사용하지 않던 거실 벽난로를 켜고 아이들이 까불고 노는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쇼호스트 오프라 윈프리가 소개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그 책의 제목은 The Power of Now (한국어 번역판 제목: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였습니다. 조용하게 온 세상을 하얗고 깨끗하게 덮은 눈 때문이었을까요, 벽난로의 이글이글 거리며 춤추던 불꽃이 사람을 홀린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따듯하게 무릎은 덮은 극세사 이불의 촉감이 유난히 부드러웠던 때문이었을까요, 그날의 거실은 토들러 아들 둘이 있는 집의 평소답지 않게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마 책에서 이 글귀들을 읽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End the delusion of time. 
시간이라는 망상을 끝내라.

Nothing exists outside of now.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The Power of Now by Eckhart Tolle (pp. 48-49)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 저는 책에서 말하는 대로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찰나 찰나 현재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참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앉은 그 자리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명상을 하게 됩니다. 명상 도중 저는 의식이 확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 몸과 바깥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고 제가 빈 공간으로 그저 존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빈 공간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했고 그 위에서 소리와 느낌과 에너지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자유롭게 흐르며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지극한 평화와 은은한 즐거움과 완벽한 자애로움이 가득 차 있었는데 저는 그 속에서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그 공간으로 존재하며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다지 오래되진 않았을 겁니다. 까불이 아이들이 저를 오랫동안 혼자 내 버려둘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사람 홀리는 벽난로 불꽃



명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저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몸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그것은 마치 평생 동안 어깨에 지고 다녀서 지고 다니는 지도 몰랐던 짐이 난생 처음으로 내려 놓아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한발 한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마룻바닥의 감촉이 너무나 신선하고 새로워서 마음이 완전히 사로 잡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된 것처럼 호기심과 장난기가 올라와서 주방 마루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놀았습니다. 걸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것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주방 카운터와 의자와 카운터에 놓인 물건들과 아이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생생했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저마다의 색깔을 찬란하게 드러내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 아이들이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음식 찌꺼기들 마저 아름답게 빛나며 위풍당당하게 영롱한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찬란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세상을 흑백 TV로만 보다가 칼라 TV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있고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아, 여러분은 색맹인 사람들이 색맹 교정 안경 처음 껴보는 영상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태어나 처음으로 생생한 색깔의 세상을 바라본 그분들은 영상 속에서 갑자기 눈물을 터뜨립니다. 저 역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이토록 영롱하다니. 이 세상은 존재 자체로 기적이구나. 나는 이 기적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구나. 



색맹 안경을 선물 받은 아내의 반응 (유투브 영상 썸네일 캡춰) 



그날 이후 저는 지극한 평화와 행복과 사랑 속에서 약 일주일의 시간을 보냅니다. 여러분이 당시 함께 생활했다면 저를 아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거리를 걸으며 느껴지는 활기찬 에너지와 바람과 소리의 움직임에 미친 사람처럼 환희에 차서 활짝 웃으며 다니기도 했고 운전을 하면서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의 감촉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주체할 수 없는 감사함과 감동을 느끼며 벅차 울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직장에서 회의를 하면서 회의실 안의 그 공기의 느낌과 창밖의 풍경과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과 그 모든 것들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소중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제가 울면 "엄마 행복해?" 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 날 이후로 행복과 감동과 감격에 젖어 우는 때가 많았거든요. 


일상에서 놓쳐왔던 기적들을 다시 발견하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순간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마음속에서는 은은한 평화와 가벼운 즐거움과 자유로움이 있었고 그 어떤 것도 힘들지 않았어요.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났을 일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까불고 싸우고 이런저런 요구를 해와도 그 어떤 일도 귀찮지 않았어요. 


직장에서도 무한한 참을성이 생겼고 평소와는 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힘들지 않게 자애롭고 평화로운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쉽게 모든 일을 척척 했는데 그 와중에도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전혀 애쓰지도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저 순간순간 지금 이 순간에만 눈앞의 일에만 충실하고 있는데 일을 다 마치고 나서 보면 마치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시작을 한 것처럼 훌륭한 결과물이 눈앞에 떡 하니 만들어져 있는 겁니다. 그 일주일 동안 직장에서 마치 슈퍼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모든 회의와 보고물과 발표물 제작과…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저는 오로지 은은한 평화와 즐거움 속에서 자연스러운 순간 순간의 리듬에 맞추어 움직였을 뿐이었고, 그 결과는 놀랍도록 훌륭했습니다. 운 좋게도 내가 우연히 행복의 문을 발견했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와...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냥 현재 이 순간만, 순간순간에만 집중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구나... 


사무실에서 즐기는 일상의 작은 행복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이 축복같은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하며 그 강렬했던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그 생생했던 순간순간의 새로운 느낌들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약 일주일이 지나자 예전의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와 익숙하게 무딘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의 저는 더 이상 예전의 제가 아니었어요. 일상의 익숙한 느낌 가운데에서도 종종 그 축복 같은 순간들이 선물처럼 다시 다가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행복에 대한 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겁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구나.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구나를 완전히, 가슴 깊이 깨달은 거였죠. 


행복은 내 안에 있다.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저 역시 이런 말은 이미 살면서 여러 번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의 진실이 그때만큼 뼛속까지 와닿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외부 상황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상황도 그대로 있었고, 상황이 앞으로 더 나아지거나 변할 이유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외부의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그 일주일 동안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날의 경험은 행복에 대한 저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됩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지금 이순간 모두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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