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다.
아버지가 무섭지 않다. 늘 그래왔다. 아마 여태까지 그에게 꾸중을 듣거나 손찌검을 당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서였는지,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늘 그가 나보다 달리기가 느리다고, 힘이 약하다고, 똑똑하지 못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곤 했다. "내가 아빠는 이길걸?"
그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난 그 웃음을 내 주장에 대한 수긍이자 패배 선언으로 받아들였고, 이런 일들이 되풀이될수록 내 안에서 아버지는 한없이 작고 우스운 존재가 되어갔다.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나한테 꼼짝 못한다"며 기세등등 떠벌리고 다녔는데, 몇몇 녀석들은 그것을 퍽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였을까,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던 그 사실들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싫어하게 되었다. 단 한마디를 쓰게 내뱉지 못하는 소심함이, 스스로의 걱정이나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답답함이 싫었다. 멍청하고 무능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시절 난 때때로 그에게 인생 선배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아빠, 아빠도 화나면 화내고 그래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충고 비슷한 말을 할라치면, 대번에 인상을 구기고 짜증을 내며 말을 잘라버렸다. 몇 차례 그의 눈에서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공허를 발견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혼자 살게 되면서 그와 마주할 일이 줄었고, 왠지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다 싶어 그를 이해하려 해보았지만, 마음속 어딘가 아버지에 대한 멸시랄까, 그런 찌꺼기들이 남아있음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어느 날 그에 대한 해묵은 앙금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는데, 우습게도 매채게는 바로 이십 년 가까이 된 그의 은수저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려 부엌에 들어왔는데,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그 은수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와 엄마, 그리고 누나의 수저는 꽤나 굴곡 많은 변천사를 겪어왔지만 아버지의 수저는 홀로 질곡의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중, 색이 바라 이제는 누렇게까지 보이는 그 수저를 그가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헌 물건 버리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엄마도 여태껏 그것을 버리거나 새것으로 바꾸자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나는 울기엔 애매한 감정에 휩싸였다.
진심으로 아버지보다 나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었던 그때에도, 그를 백안시하며 그로부터 잔인하리만치 거리를 두었던 때에도, 한결같이 그는 그 은수저로 밥을 먹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수저들과 색감과 모양이 조금 다를 뿐인 그 은수저가, 그에게는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권위는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는 홀로 식사를 할 때도,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거나 여행을 가서도 늘 그것을 놓지 않았었다.
뭉게뭉게 살아나는 기억들에 머리가 아팠고, 한없이 아버지가 안쓰러웠으며,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이후로 나는 그에 대한 낡은 앙금들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무슨 마음의 조화였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변화의 이유가 궁금하지는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손에 아직 그 은수저가 쥐어져 있고, 내가 이전보다 제법 그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