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 내 인생

2014년 1월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다.

by SeungJae Shin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 어떤 과목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수업의 주제가 '가사노동의 주체는 누구인가'였다는 사실만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런 주제를 둘러싼 토론이 으레 그러하듯 그날의 토론 역시 양성 대결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남학생 중 오직 나만이 유일하게 "집안일은 온 가족이 함께 해야한다"라고 주장했었다. 어린 나이에 당시로서는 꽤나 급진적인 노선을 표방했던 나는 담임 선생님과 여학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었드랬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거나, 나의 가족이 집에서 임무분담제를 실시했던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사노동의 제 1주체가 엄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열한 살 무렵부터 코스프레를 했던 셈이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스스로 멋있다고 느꼈던 모습, 올바르다고 생각한 태도를 가장해 주위의 관심을 사고자 하는 유치함의 발현이었을 게다.


돌이켜보면 난 꽤 자주 저런 식의 코스프레를 해왔고,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나 자신이 또래 중에서, 특히나 동년배 남자 중에서는 인권감수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이게 화장기만 가득 머금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일종의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상념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내적 계기와 외적 요인이 하나씩 있는데, 전자는 지인들과의 대화였다. 보돌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 대작을 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내게 "뭐든지 시작은 코스프레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 다인과의 담소를 통해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한정적이며, 그것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세상엔 코스프레조차 할 줄 모르는 덜떨어진 인간들이 참 많구나"라는 강렬한 깨달음을 주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이 사회도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한국 손님들이 불편을 느끼'니까 외국인들을 제대로 된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하는 후미진 곳에 격리시키는 목욕탕이라니. 만약 유럽에서 황인종만 따로 수용하는 욕탕이 생긴다면 인종차별 반대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둘러메고 제일 앞장서서 난리칠 인간들이 바로 저 '불편한'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지? 카페에 장애인이 앉아있으니 어떤 여자가 점원에게 "우리 애가 불편해하니까 저분을 다른 자리로 배치하면 안 되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했단다. 대체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면 장애인이 있다고 불편해하는 애로 길러지는 걸까? 그리고 저리도 당당하게 부당함을 요구하는 부모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을까?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국이 아주 악질적인 차별 국가라는 사실은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싫은 걸 어쩌란 말이냐, 싫어할 권리도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 싫은 걸 어쩌겠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혐오를 표출하는 순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고, 어떤 나라에선 '혐오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하는 소리일까.


그러니 제발, '진정성', '진심'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은 집어치우고 그저 코스프레라도 잘 하자. 마음의 문제는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속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더라도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다. 솔직히 외국인이랑 같이 목욕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을 격리 수용하는 데에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걸로 그만이다.


코스프레는 시작이다. 거기서 끝이어도 충분하다. "척하지 말라"는 손가락질에는 이렇게 대답하도록 하자. "코스프레가 뭐가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