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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29. 2019

#33. 나는 내가 지키기로

2019.10.28

아직도 온몸이 쑤신다. 지난 일요일 농구의 여파다. James와 함께 한 농구팀의 게스트로 참여해 아침 9시부터 세 시간 동안 코트를 내달렸다. 대부분 30~40대의 아저씨들이었고 투쟁적이기보다는 다치지 않게 즐농하는 분위기라 편하게 임할 수 있었다. 21g도 같이 와서 각방 삼 형제가 모두 모였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몇몇 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서너 명쯤 되는 꼬마들이 코트 안에서 농구공을 튀기고 자전거를 타고 자기들끼리 달리기 경주를 하기도 했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한 친구는 벌써 러닝 드리블을 안정감 넘치게 해서 깜짝 놀랐다. 그는 아마 평생을 농구를 벗 삼게 되겠지, 아빠 그리고 여러 삼촌들과 패스를 주고 받게되겠지. 괜히 부러웠다.


마침 체육관이 형의 나와바리 인근이어서 시합이 끝난 뒤엔 형이 어릴 적부터 찾았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시래기 불고기와 메밀 전병, 가마솥밥을 뚝딱 해치웠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어서 평소의 나답잖게 과식을 하게 됐다. 든든한 식사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헤어졌다.


피붙이보다 가까이 두고 자주 만나는 사이이지만, 형과 나 사이에도 다툼이 있었고 인연이 끊길 뻔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나의 실수 탓이다. 그 순간들을 어떻게든 잘 넘어올 수 있었음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또 아량을 베풀어준 형에게 고맙다. 형 노릇하기 참 힘들 것이다. 두고두고 보은하겠다.


한때 James만큼이나 서로 애정했던 형이 있었다. 그는 내 생에 첫 절교 상대가 됐다. 돌아보면 별것 아닌데, 당시의 나는 그가 내게 한 행동과 발언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례하다고 느꼈다. 그 무례가 나에 국한되지 않고 내가 귀히 여기던 다른 이에게까지 미쳤다고 느꼈고 실제로 그도 매우 언짢아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했다.


사실 후회도 많이 했다. 특히 사건이 있고 약 반 년 동안은 잠도 설쳤다.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볼까, 싶다가 아니 잘못은 그쪽이 했는데 내가 왜, 했다가 우리 너무 잘 맞았는데, 감상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미련은 없다. 난 그때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렇게 끝이 날 인연이라면 딱 거기까지인 것이고, 삶은 늘 다양한 일들을 품고 있고, 나는 당연하게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 회사에서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달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나를 향한 어떤 이의 언행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음을 명백하게 깨닫게 됐고, 그 마음에 따라 내 나름의 대처를 했다. 분명 누구 한쪽에게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 쪽의 책임이 더 클 수 있고, 훗날 지금을 회상하며 부끄러움에 양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키기로 했으니, 이번에도 이게 최선이리라 믿기로 한다. 감정도 한정된 자원인데, 쓰잘데기 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기로 한다. 나중에 발등이 부르트도록 이불킥을 할지언정 당장의 분노를 억누르지 않기로 한다. 나도 찌질하고 옹졸하고 모자란 존재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기로 한다. 즐겁게 살기에도 바쁜 인생 아닌가, 되새기며 내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한다. 후련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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