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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25. 2019

#32. 두린이로 크자

2019.10.25.

한국시리즈가 한창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단한 야구광인 듯싶지만, 최근 몇 년간 한차례도 야구를 보지 않았다. 사실 2015년, 그러니까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한 첫해만 이례적으로 직관도 가고 중계도 챙겨봤지 내 인생 나머지 삼십이 년은 그닥 야구에 흥미가 없었다. 무려 부산 토박이인데도 말이다. 고통받는 갈매기들을 보면 다행이다 싶지만, 아무튼.


하지만 야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썩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는데 이는 분명 만화 덕분이다. <H2>를 필두로 한 아다치 미츠루의 숱한 작품들과 카이타니 시노부의 <원아웃>, 모리타카 유지의 <그라제니>, 보다 멀리로는 카와 신반치의 <4번타자 왕종훈>과 니시자와 노부타카의 <홈런왕 강속구>까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명작들을 탐닉해왔다. 야구를 글과 그림으로 배웠달까.


그중에서 “그래도 너의 원픽은 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동안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장고 끝에 <머니볼>이라고 답할 것이다. 베넷 밀러가 감독하고 스티브 자일리언과 아론 소킨이 함께 스고 브래드 피트 그리고 조나 힐이 명연기를 펼친 바로 그 영화다. 뭐 거의 완벽에 가깝지 않은가 확신이 드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딱히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오늘은 웬일인지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면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야구는 아이들이 보는 게 아니라며 핑크퐁을 틀어 달라는 조카들을 꾸역꾸역 설득하며, 내가 홈 베이스라도 된 양 무섭게 슬라이딩해오는 그들을 감당하며 리모컨을 쥐고 있다. 녀석들이 조금 더 크면 야구장을 데려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앗, 시리즈 스코어는 2 대 0으로, 3차전에서는 넉 점을 뒤지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가 7회 말 무사 만루 찬스를 맞이했다. 타석에는 대타 박동원. 큰 거 한 방이면 승부는 원점이다. 얼마나 긴장될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여기서 담장을 넘긴다면 또 어떤 기분이 들까. 아, 싸인 미스였는지 희생 플라이성 타구를 쳤지만 한 점도 내지 못하고 아웃카운트 두 개를 내줬다. 이렇게 치명적인 실수를 한 선수의 심정은 또 어떨까.


스포츠는 이래서 매력적이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사건들이 모여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춘 거대한 서사시로 거듭난다는 점이. 선수들의 느낄 희열과 좌절 그리고 그 사이 숱한 감정들이 너무너무너무 궁금해서 때로는 미쳐버릴 것 같다는 점에서.


그나저나 두산 참 잘한다. 조카들아 너넨 고향도 서울이겠다, 두린이로 크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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