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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Oct 24. 2019

#31.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

2019.10.23.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포스터에 적힌 글귀다. 처음 저 문장을 보고는 꽤 억지스럽다고 느꼈다. 모두가 첫사랑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될 수 있는 건 아닐 거라 믿어서다.

첫사랑, 나아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해석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자원, 특히 비교적 어린 시절에 품게 되는 생애 첫 연심은 몇몇 인기쟁이들이 독과점하게 마련이니까. 이를테면 수지랄지, 이제훈이랄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도 내겐 비슷한 뉘앙스가 풍긴다. 당연히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고,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중심에 둔 서사를 살아나간다. 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순간 혹은 상황에서 ‘내가 주인공’이라는 실감을 맛보기란 또한 쉽지 않다. 이 또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tvN의 예능 <유퀴즈온 더 블럭>을 시즌 1부터 지금까지 한 편도 빠짐없이 챙겨 본 이유는 바로 그 희귀한 감각,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슈퍼마켓, 구두방, 미용실, 음식점, 세탁소와 같이 우리 주변에 흔히 자리하지만 주목할 일은 별로 없는 그곳에 어김없이 고유의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이 살아왔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갈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없이 무해한 톤으로,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질감으로 말이다.

매회 달라지는 공통 질문도 좋다. 내게 필요한 단축키는 무엇인지, 내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였는지, 내 인생에서 편집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지, 내 인생 콘텐츠는 무엇인지, 내게 영향을 준 대중문화 스타는 누구인지 등등. 이번 주에 방영된 회차에서는 내 일대기를 다룬 프로그램의 첫 자막 혹은 내레이션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도 있었는데, 고심해보아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간 찾게 되겠지.

이태원에서 촬영한 에피소드에서는 우리 작업실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진짜 너무너무 아쉬웠다. 만약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더라면 나도 큰자기 아기자기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운이 따라줬다면 상금도 탈 수 있었을 텐데. 다시 돌아봐도 무진장 아쉽다.

최근에 사진을 배워서인지, 사진을 찍는 행위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주인공 기분을 선사할 근사한 수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마주한 사람처럼 꽃을 품에 안은 사람처럼, 카메라 앞에서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James 스승님이 본인의 카메라를 빌려주셨으니, 이제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보아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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