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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Nov 22. 2019

#43. 아이리시맨을 향한 대장정

2019.11.21.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을 봤다. 원래는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작업실에서 형들과 볼까 했는데, 오래도록 고대했던 이 작품을 극장에서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무감과 한시라도 빨리 보고프다는 열망에 대뜸 티켓을 예매해버렸다. 씨네큐브 광화문, 저녁 7시 10분. 헐리우드 키드 James와 시간이 맞았다. 209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을 버티기 위해, 중간 공백 없이 온전히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오후 5시부터 물을 마시지 않았다. 계산해본 적은 없지만 사무실에서 습관처럼 계속 물을 마시기에, 하루 2리터는 넘는 것 같다, 자꾸만 물통을 집으려는 손을 자제하느라 혼났다. 퇴근 후 따릉이를 타고 흥국생명빌딩으로 갔다. 영화관으로 향하기 전 편의점에 들러 졸음을 쫓고 갈증을 달래기 위한 껌 한 통을 샀다. 너무 허기가 지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니만큼 바나나 두 개도 꾸역꾸역 먹었다. 입장 직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좌석에 앉아 코트를 벗고 스마트폰을 에어플레인 모드로 맞추니 드디어 조명이 어두워졌다. 시작이다.

상영관 내부가 다시 밝아지니 이미 밤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형과 나는 근처 치킨집에 들어가 치킨 한 마리와 코카콜라 500 ml 두 개를 주문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에 대한 소회를 짧게 공유하고 나머지는 늘 그랬듯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최근에 구입한 장갑과 귀마개를 착용하고 재차 따릉이에 올랐다. 얼른 침대에 누워 쉬고 싶었는지 쉼 없이 페달을 밟았다. 예상보다 더 따뜻한 장갑과 귀마개의 방한력에 감탄하며 쌩쌩 달렸다. 독립문을 지나 무악재 고개를 전속력으로 넘으면서 ‘벅차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가쁜 호흡 탓만은 아닐 텐데, 하면서.

답은 영화였다. 맞다, 오늘 본 것은 분명 벅찬 무언가였다. 막연히 품었던 기대는 보기 좋게 배반당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근사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가까울 근(近)과 닮을 사(似), 근사. 무엇과 가깝고 무엇과 닮은 일은 왜 근사한 일일까, 무엇과 가깝고 무엇과 닮았기에 나는 이 영화를 근사하다고 느꼈나를 생각해본다. 그건 아마 내가 어릴 적 가슴에 품었던 ‘영화’의 형상 그리고 ‘영화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영감님들, 페인트칠 여전하시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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