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 이야기. 요시오카 일파 70인과의 싸움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은 무사시는, 어느 가정에 식객으로 머물게 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다. 그 시기 그의 머리속을 쉼 없이 맴돌았던 것은 천하를 내려다보는 검객 세키슈사이가 그에게 했던 "천하무적은 한낱 아지랑이일 뿐"이란 한마디였다.
몇 해가 흐른 뒤 다시 길에 오른 무사시는 어릴 적부터 경외심을 품고 있던 '검귀' 이토 잇토사이와 우연히 마주친다. 잇토사이는 자연스럽게 무사시에게 싸움을 걸어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도 이길까 말까 한, 우리는 평생을 걸고 그런 상대를 찾고있지. 안 그러냐 무사시?"
주춤하던 무사시는 이렇게 말한다. "천하무적은 아지랑이, 한낱 말에 불과하오. 언제부터인지 잊고 있었소. 내가 가장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에 비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강한가 약한가,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소" 여기서 잇토사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실망했다, 거짓말쟁이. 검으로 살기로 정한 이상 옳은가, 그른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오직 느낄 것은 즐거운가, 아닌가다"
일합을 겨루고 널브러진 무사시는 지옥도와 같았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나는 이때, 어쩌면 무사시는 즐겁지 않았던 것 아닐까, 불안했다. 하지만 그는 유례없이 흐느끼며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캄캄한 밤도 무섭지 않았다. 검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내 안에 하얀 빛이 있었으니까.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 웃으며 지켜봐 주고 있었으니까, 이름 없는 누군가가"
갑작스러운 추위가 들이닥친 오늘, 더없이 따뜻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대목이 떠올랐다. 겨울이 지나고 올해가 가면 지금 맛보는 기쁨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를 모색할 것이고,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길을 걸어갈 테다. 그렇게 되면 팟캐스트 '영화식당'에도 불가피하게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혹시나 여태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 생겨 내가 이 자리를 떠나게 된다면, 그때 나도 무사시처럼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정말, 이 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나 역시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한동안은 뒤돌아보지 않고 발이 닫는 곳까지 가봐야겠다. 그저 즐거웁기 위하여.
팟캐스트 '영화식당'에 전심전력을 쏟고 있던 시기, 불현듯 찾아온 불안감을 달래기 위하여 썼던 글. 다시 한 번 다행스럽게도 방송은 계속되고 있고, 나는 여전히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