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뒤뚱, 가는 데까지

2013년 봄, 팟캐스트 '영화식당' 백일을 맞이해 쓰다.

by SeungJae Shin

동명의 책과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 크리스 매캔들리스는 여느 여행자들이 그러하듯 ‘진정한 나’를 찾아 야생으로 떠났다. 자신을 둘러싼 세속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인 그의 여정은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줌과 동시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그가 이처럼 뜨거운 호응을 받을만한 인물인가 아니면, 그저 치기 어린 부랑자에 불과한가.


정작 매캔들리스 본인은 이 지리멸렬한 논쟁에 추호의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다만 그가 방랑의 막바지에 마주한 깨달음에 공명할 뿐. 여행은 혁명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행복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는 것.


“여기도 사람이 사는 구나” 여태껏 한 번도 와본 적이 없거나 있는지도 몰랐던 곳을 거닐며 느끼는 숱한 감정들 중 저만큼 여행의 본질을 잘 표현하는 문장이 있을까? 나의 작은 우주 너머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는 인식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팟캐스트 ‘영화식당’도 일종의 여행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도 그렇고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아 이 사람은 이걸 이렇게 보는 구나’, ‘아 이 친구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하는 끄덕끄덕이 그렇다. 그 풍경이 기대에 못 미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도보여행이랄까.


기쁘게도, 백일을 갓 넘긴 우리의 유랑에 대한 칭찬이 지금까지는 현재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과거형으로 후퇴할 것이고 우리를 향한 박한 평가가 조금씩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들 앞에서 나는 종종 “들을 사람만 들으라고 해”라며 진심 담긴 허세를 부린다. “재미 없어지면 나도 그만둘 거야”하고 치기를 가장한다.


이 태도는 가능한 한 오래도록 고수하고 싶다. 하지만 이 냉소가, 더욱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영화식당’의 발자국에 무게를 더하고 싶은 욕심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는다. 질투가 기형도의 힘이었다면, 나의 동력은 바로 저 객기다.


즐겁게, 열심히, 잘 하고 싶다”라고 언젠가 말했던가. 이 순환을 88올림픽 굴렁쇠 소년이 굴렁쇠 굴리듯 쭉쭉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필 굴렁쇠 모양이 삼각형이라 비포장도로 달리는 스쿠터 마냥 덜컹거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일 테다. 어디 그렇다고 핸들을 놓을쏘냐. 넘어지고 찧고 구르고 깨져도 금세 웃으며 두 발로 땅을 딛던 코흘리개 시절처럼, 어디 한번 뒤뚱뒤뚱 가는 데까지 가봐야지. 이제 고작 백일이다.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토록 결기 가득한 글을 쓰게 만든 팟캐스트 '영화식당'은 어느덧 햇수로 4년을 지나고 있다. 찾아보니 오늘로 정확히 1184일째다. 다행스럽게도 이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시작을 함께한 멤버는 나를 제외하곤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고, 지금도 여전히 여러 훌륭한 이들이 힘을 모아 이끌어 가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힘 닿는데까지 이어가고 싶다. 이제 고작 118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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