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하늘소를 떠올린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집 근처 풀밭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까만 몸통에 하얀 반점들을 품은 조그마한 곤충. 하늘소의 존재를 최초로 일러준 것은 당시 내가 할머니 다음으로 좋아했던 ‘청이 행님’ 이다. 한 살 터울인 우리는 사이좋은 사촌 지간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어느 날 그가 “이거 봐라 이게 하늘소다, 천연기념물이다”라며 정성스레 모은 두 손을 내밀었다.
경상도 소년의 발음 탓에 나는 ‘천연기념물’을 ‘천년기념물’로 알아들었고,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아 이 녀석은 천년 넘게 사는가 보다’하고 멋대로 믿어버렸다. 하늘소의 위상이 졸지에 십장생 우두머리 급으로 격상되었으니 호들갑을 떨 만도 한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 맞나” 정도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 살아봐야 5개월 남짓이라는 하늘소의 수명처럼, 천년만년 변치 않을 거라 여겼던 우리의 우정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 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내게 밤늦도록 알파벳을 가르쳐주고 처음으로 포르노도 보여줬던 그였는데, 그로부터 1년쯤 후 우연히 오락실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나를 차갑게 외면했다.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하려던 나는 그 싸늘함이 너무나 씁쓸해 허랑해진 가슴으로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다.
아마 그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으리라. 자신보다 어린 동생과 살갑게 어울리는 모습을 동급생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들 세계에서 나는 코흘리개, 본인들은 이미 다 큰 어른이었을 테니 말이다. 돌아보면 나는 그가 나를 백안시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를 이해했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단지 ‘그래, 이런 거구나’하며 속으로 되뇔 뿐이었으니까.
서서히 다른 기억들 속에 묻혀 그의 흔적이 가려졌을 즈음, 실로 오랜만에 하늘소를 만났다. 열다섯의 여름 방학. 따가운 뙤약볕과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에 어쩐지 아득해진 정신으로 홀로 길을 걷던 중, 버스정류장 맞은편 가로수에 앉은 하늘소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진작에 우리 동네에서는 자취를 감춘 줄로만 알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성큼 다가가 손을 뻗었을 때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친했는데, 이제 완전히 남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괜히 분한 기분이 들어 싸움은커녕 맞을 줄이나 알았지 누굴 때려본 적도 없던 내가 ‘길에서 마주치면 흠씬 패 버려야지’하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그와 재회할 자리를 만들겠노라 청한다면, 정중히 사양할 것이다. 어설프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색하게 연락처를 교환하고, 진심이 아닌 약속들로 훗날을 기약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금 친우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겠지만, 글쎄. 그보단 그저 하늘소처럼 내 추억의 일부로, 나만의 ‘천년기념물’로 그를 남겨두고 싶다. 언제까지고 아련하게, 애틋한 심정으로 하늘소를 기다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