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겨울에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리집 강아지 마롱이는 식구들이 단체로 부산을 떨며 나갈 준비를 하면, 금세 눈치채고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도 데려가"라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곤 했다. 채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바라보면 언제나 마롱이가 문 앞에 먼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를 동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홀로 집을 지키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마롱이는 낑낑거리고 울다가 컹컹 짖다가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누나와 엄마가 부산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마롱이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그를 꼭 껴안고 누워있었다. 귀도 밝지, 현관문 소리에 벌떡 일어나 달려나간 녀석은 참으로 처절하게도 철문을 긁어댔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별무소용, 나조차 애잔해져 버렸다.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절규하던 마롱이가 갑자기 홱 뒤로 돌더니, 평시의 느긋한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식탁이었다. 사료를 허겁지겁 입에 넣는 와중에도 간간이 구슬픈 가락을 읇기도 했지만,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제 이불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나는 그 모습이 퍽 감동적이어서 있는 힘껏 녀석의 온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가끔 사람들은 억제되지 않는 본능 앞에 무력함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경멸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렇게 슬픈데 밥이 넘어가냐?", "지금 잠이 오십니까"와 같은 말들. 우리의 몸이 보내는 신호 덕에 생을 지속되는 것일 텐데도, 여태껏 우리는 너무 그 '몸의 텔레파시'를 백안시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절망, 좌절, 슬픔 같은 것들로 인해 괴롭다면, 인간의 지위를 잠시 내려놓고 금수의 길을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예컨대 평소보다 더더욱 값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코미디나 예능 프로를 주욱 틀어놓고 너털하게 웃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성욕을 해소하는 등의 1차원적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말 어쩔 때 보면 인간은 스스로를 너무 대단한 존재라 여기는 것 같다. <그래비티>에 대해 어느 평론가가 했던 "이 영화는 사실 우주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란 얼토당토에도 비슷한 사고방식이 깔려 있겠지. 참 피곤하게 산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하찮아지는 게 낫겠다. 그편이 훨씬 더 자유로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