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복 자락 휘날리며 동네를 활보하던 일곱 살 무렵의 일이다. 당시 나는 만화영화 <아벨탐험대>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곤 해가 어느 정도 기울었는지, 바람이 얼마나 차가워졌는지를 감지하는 것 밖에 없었지만 단 한 번도 본방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다. 놀이터 최후의 1인의 자리를 줄곧 지켜온 나였지만, 아벨의 모험을 좇았던 수개월간은 조그마한 공터의 왕좌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악의 대왕 바라모스를 무찌르려 동분서주하는 용사들이 “너와 내가 손잡으면 미래는 우리의 것”이라 외치는데, 어찌 그들을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절절한 순애보는 난관에 봉착하게 마련인 것일까, 내 사랑에도 시련은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벨탐험대> 대망의 최종화 방영 시간과 태권도 승급 심사의 일정이 겹쳐버린 것이다. 평소라면 원하는 때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저 멀리 어딘가에서 양복 차림의 관장님이 찾아오는 날 만큼은 자율성이 허락되지 않았다. 전심전력을 다해 응원해왔던 여정의 마지막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지 못할 운명에 처한 나의 심정은 처참 그 자체였다.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언제나 슬기롭게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던 아벨 일행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길은 있었다.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 햇볕 냄새가 가시지 않은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굳게 닫힌 방문을 연 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에 빠져있던 막냇삼촌을 깨웠다. 그의 비몽사몽은 개의치 않고 나의 메시지를 전했다. 꼭, 정말 꼭, 놓치지 말고 녹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테이프도 잘 감긴 상태로 비디오 테크니카에 들어가 있고, 채널도 맞춰놓았으니 제시간에 잠깐 깨서 빨간 버튼만 눌러주면 된다고 말했다. 집을 나와 도장으로 냅다 뛰었다.
이토록 간절히 원했으니, 제아무리 우주라도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 믿었던 나는 심사에서 예상외의 큰 수확을 거두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트로피라는 물건을 거머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실력과는 무관하게 계속 태권도를 배우라는 취지로 모두에게 차례로 나눠주었던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생각지도 못 했던 수상에 나는 무척이나 들떴다. 꽤나 무게가 나갔던 금빛 전리품을 품에 안고 한 시간 전보다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집을 향해 달렸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 해가 중천이었지만 삼촌은 여전히 혼자 한밤중이었다. 그새 장을 보고 귀가한 엄마와 할머니가 대견하다며 나를 추켜세웠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땅을 치며 통곡했다. 왜 녹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를 질렀다. 목이 쉬고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잠이 들었다.
이처럼 나에게도 운수 좋은 날이 있었다. 그날만 떠올리면, 어쩌면 사람 사는 게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만큼 나쁜 일이 있고, 완전히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 좋을 수만은 없는 그런 게 삶이지 싶다.
이토록 극적인 순간을 평생 얼마나 경험하겠는가 마는, 어찌되었든 인생이란 휘황찬란한 트로피와 손에 땀을 쥐는 모험을 동시에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은 모양이다. 가끔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도 같다. 어쨌든 분명 괴로움도 버텨낼 가치가 있고, 행복감도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