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소년에게
여태 제법 많은 만화책을 읽어 오면서 가장 커다란 동질감을 느꼈던 캐릭터는 <나루토>의 가아라다. 모래 갑옷으로 항상 자신을 둘러싸고 상처받기를 거부하는, 누군가 본인을 공격했을 땐 눈을 부라리며 배 이상으로 갚아주려 하는,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깊이 애정을 갈구하는 그 모습 때문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굴 소년'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랬는지, 가아라가 상처받은 짐승에서 한없이 착한 리더로 변해갈 땐 배신감마저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주욱 나도 가아라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등감으로 가득 차 나를 향한 모든 관심과 애정을 의심하고 쳐내기에 급급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초한 목마름에 괴로워하는 사회 부적응자였던 내가 꽤나 둥글게 다듬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간혹 이런 내가 어리둥절하지만, 더없이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다.
가끔 "나는 태생적으로 우울한 인간이야, 그러니 나는 행복해져선 안돼"류의 자의식에 홀로 처절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에게서 내 지난날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우울하기 위해 우울'했던 사람이었던 듯도 싶다. 그게 내 몸에 맞는 옷이라 여겼던 것일 테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달라진 나에게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 이제 그 누추한 우울의 거적대기를 벗어던질 때도 되었으니까. 아니 이미 한참 전에 그랬어야 했으니까. 가아라의 눈꼬리가 쳐졌을 때 탄식을 금치 못 했던 그때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이젠 그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픈 내가 남았다. 굴 소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저 이 말 한마디 전하고 싶을 뿐. 안녕, 굴 소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