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그렸냐 물어보거든, 참 잘했다고 답하자.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 당시의 미술 시간은 여타 수업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는데, 바로 작품 활동이 끝난 뒤면 언제나 여학생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훈훈함이었다. 뭐랄까, '서로 칭찬'이란 장단에 맞춰 행해지는 대낮의 하하호호 강강수월래라 불리울 만한 그런 시간이었다. '칭찬 캐치볼'이란 수사도 제법 절묘하겠다.
그들만의 의식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술시간이 종료될 무렵 주어진 과제를 마무리 한 아이가 먼저 옆자리에 앉은 동무에게 "내 진짜 못 그렸제"란 말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채 건넨다. 언행불일치 화법이라고 해두자. 그러면 상대방은 "아니다 잘 그렸다"라는 마법의 주문으로 리시브를 한다. 정석이다. 이 과정은 다음 교시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무한 반복된다.
가끔 이 불문율을 깨는 무법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광경이 참으로 볼만하다. 어느 날, 부푼 마음으로 날린 "내 진짜 못 그렸제" 서브를 "어 진짜 못 그렸네"로 사정없이 블로킹해버린 용자가 나타났다. 점수를 잃은 녀석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라도 마주한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종이 울린 뒤 가까스로 재난 현장에서 탈출한 생존자는 다른 동료들을 교실 뒤로 소집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울분에 가득 찬 한 마디를 토해냈다. "내는 지 잘 못하는 것도 맨날 잘했다고 해줬는데 진짜 싸가지없는 년이다" 그들을 몰래 관찰하던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애석하게도 그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니 먼데 끄지라"는 일갈은 별책부록.
언젠가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퍼뜩 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답정너'는 결코 근자에 생겨난 경향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외려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 않을까? 누구나 타인에게 무언가에 대한 의견을 구할 때 속으로는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고민 상담은 그저 들어주기에서 멈추는 편이 바람직한 지도 모르겠다. 상담자가 정말 몸과 마음을 바쳐 건져올린 해결책도 피상담자에게는 한낱 주제넘는 참견으로 들리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이 현상에 대해 들은 기억이 있는데, 가물가물하다.
우야든둥,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닥치고 그냥 내가 하는 말에 추임새나 넣어"라는 문장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닥추'는 '닥치고 추천'의 준말로 많이 쓰이니까, '닥말새'가 괜찮아 보인다. 닥말새 닥말새. 어감도 좋고. 그러니 우리 모두 가슴속에 답정너, 닥말새 쯤은 새기고 살자.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