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버겁던 시절이 있었다. 스무 살, 여태 한 번도 스스로의 계획에 따라 생활해 본 일이 없던 나는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휘청거렸다. ‘대체 무얼 해야 하지?’ 학과에서 새내기를 위해 적당히 짜놓은 스케줄이 끝나면 관성적으로 과방으로 왔다. 때가 많이 탄 소파에 앉아 아직 친해지지 않은 동기들과 적당히 농을 주고받다가,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터덜터덜 하숙집으로 향했다.
뒤늦게 합격 통보를 받은 탓에 부랴부랴 마련한 하숙집은 시골의 여인숙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단출한 상태였다. 이불, 베게, 옷가지 몇 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기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서울,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 건물 한편에 내가 있었다. 상경하며 가져온 1인용 전기장판에 몸을 뉘고, 후드를 뒤집어쓴 채 하얀 입김이 허공에 생겼다 사라지는 모습을 나는, 하염없이 응시할 따름이었다.
그 시절 난 어디를 가던 버스를 이용했다. 지하철이 훨씬 더 빠르고 편리한 때에도 꾸역꾸역 그랬다. 이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탓이다. 목적지까지 멀리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면 그제야 안심이 됐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부채감, 삶의 진공 상태에서 부유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 그곳이 어디든 적어도 내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졌으니 말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술자리에서 이십 대가 지긋지긋하다고, 어서 서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던 몇 터울 위 선배의 말. 속으로 조소를 아낌없이 퍼부었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지. 물론 행복한 시간도, 소중한 순간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내 지난 십 년은 전반적으로 허랑하고 누추했다. 으레 인생의 황금기쯤으로 여겨지는 해들에 볕드는 날은 이따금 뿐이었다.
야구를 즐기게 된 지 1년 남짓 된 요즘, 그때 내가 야구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정말 좋은 벗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일이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어쩌면 오만가지 감정에 일희일비하며 나름 충만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일주일에 여섯 날을 마음을 다해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당시의 내겐 얼마나 큰 위안이었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니 그 선배도 야구를 참 좋아했더랬다. 그녀에게 과연 야구는 어떤 의미였을지, 괜스레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