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이 많은 편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무언가를 사달라고 졸라대거나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구슬, 팽이,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 안에 담겨 나오는 조악한 피규어에 애가 닳았을 뿐, 옆집 꼬마가 늘 들고 다니던 변신 로봇이나 아랫집 친구가 갖고 있던 슈퍼패미콤, 윗집 형이 골목을 접수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거대한 비비탄총과 같은 진귀한 물품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물론 이불에 파묻힌 채 동네 문방구에서 가져온 레고 카탈로그를 닳도록 넘겨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의식을 여러 해 치르기도 했지만, 막상 충분한 돈이 있거나 어른들에게 완전한 선택권을 부여받은 순간에도 모험심을 발동하지는 못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씀씀이를 키울 형편이 못 되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인지, 애초에 나란 인간이 생겨먹기를 이렇게 좀스럽게 생겨먹은 것인지, 하여간 요즘도 물건에 큰 지출을 하는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살면서 가끔씩은 나도 ‘터무니없는 곳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써’버리곤 했다. 소설 쓰는 김연수 님의 말마따나 그 경험들이 나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흔치 않은 사치의 기억들이기에 언제든 쉬이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사치 연대기는 다음 기회에 차차 알아보기로 하자, 오늘 할 이야기는 따로 있으니까.
나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로는 감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품있는 모습을 한, 마치 내가 포마드 머리에 담배를 꼬나 문 알베르 까뮈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우아한 자태의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다. 이 망할 놈의 정부에 추가로 지불한 관세까지 합치면 정확히 총 531,470원이라는 거금을 쏟아 부은 QWERKYWRITER로 말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꽤 오래전부터 클래식 타자기를 갖고싶었다. 아마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타자기를 보면서 그 모양과 작동 원리가, 무엇보다 특유의 달각달각 하는 소리가 근사하다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기획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독특한 IT 기기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QWERKYWRITER를 알게 되었고, 수개월을 망설인 끝에 두 눈 질끈 감고 시원하게 질러 버렸다.
결과는 대만족. 이 녀석이 언제 책상 한 켠이나 서랍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만큼은 더없이 행복하다. 당장이라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랄지, 『위대한 영화』랄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랄지, 아무튼 내 책장에 꽂힌 책의 저자들처럼 멋진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 그래도 무리해서는 안되지, 암 안되고 말고. 좋은 것일수록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음미해야지. 그럼 오늘의 자랑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