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지 않은 지 석 달 가량 되었다. 베란다에 놓아둔 자전거에는 여기저기 먼지가 앉았고 바퀴의 바람도 빠졌다. 보나마나 체인도 굳어 기름칠이 필요할 것이다. 한창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에는 아무리 험한 길을 달려도 멀쩡했는데, 처량한 모습이다. 이 녀석과 함께하지 않는 출퇴근길은 상상도 하기 싫었는데,날이 추워지면서 하루 이틀 멀리하다 보니 어느새 큰맘을 먹어도 탈까 말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도 마찬가지다.
참 오래도 걸렸다. 짤막한 토막글이라도 써야겠단 마음을 먹은 시점부터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기까지의 여정은 뭐랄까, 눈발에 발을 잘못 디딘 르윈 데이비스의 젖은 양말 만큼이나 질척질척 지난했다. 떠오르는, 아니 ‘뭐 쓰지 뭐 쓰지’ 안절부절하며 쥐어짜낸 옛 기억이나 그간 나를 스쳐갔던 상념들을 메모 해놓고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기를 수 차례,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금새 바보가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공안 치하에 두기를 또 여러 달. 어찌 이런 때에만 총파업 궐기대회의 선두에 서게 되는지, 마지못해 자리에 앉은 이 대타협도 어떻게 마무리가 될는지 앞이 깜깜하기는 여전하다.
왜 이리도 글쓰기가 어려울까. 글쓰기야 당연히 누구에게나 힘든 것일테니 차치하고, 요즘은 글쓰기를 시도하는 일 자체가, 노트북을 켜고 책상에 앉는 일부터가 정말 힘들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그럴 것이고, ‘피곤한데 잠이나 자야지 글은 무슨 놈의 글이냐’하는 거부하기엔 너무 달콤한 속삭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같은 변명을 반복하면서 아예 손을 놓아 버렸다, 부끄럽게도.
글쓰기를 게을리했던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쩌면 부끄러워서 글을 못 썼던 것도 같다.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생각과 감정을 나름의 언어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나는 이 일이 아직 쑥스럽다. 사는 게 그렇지 뭐, 뭐라도 되겠지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런 식의 시큰둥한 태도가 훨씬 편하다. 한 때는 이게 멋있다고믿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냥 편할 뿐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거나, 자신의 비애를 격하게 토로하거나, 아무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러니까 솔직한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경멸은 내가 그것에 서툴기 때문에 만들어낸 방어 기제 같기도 해서 스스로가 참 비겁하게 느껴진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을것이라 가정한다 해도 일단 ‘나’라는 독자는 어디 가지않는다. 타인의 평가를 크게 신경썼던 기억은 없다. 가끔 칭찬을 받으면 대단히 기뻤지만, 그보다는 나 자신의 성취감이 더 중요했고, 내가 쓰고 내가 좋아했던 글은 과장하나 안 보태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랬던 기간도 넉넉 잡아봐야 반년이 채 될까, 그마저도 그시절 썼던 것들을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붉어지긴 매한가지다.
대단한 문호라도 된 양 작가연하는 것 같아 가소롭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잘 쓰고 싶다. ‘이거 봐, 내가 이걸 썼어’하고 자랑할만한 좋은 글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운동이든, 노래든, 게임이든 어릴 때부터 뭐든지 마음 속으로 잘하고 싶다 되뇌기만 했지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끈질기게 연습했던 적이 없다. 그 버릇이 어딜 가겠나. 일단 뭘 써야 실력이 늘던가 말던가 할 것 아니냐, 한심한 노릇이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뻔뻔해져야겠다. 나를 표현하는 일에도 더 뻔뻔하게, 글도 잘 쓰려고 애쓰지 말고, 눈치도 보지 말고 그냥 뻔뻔하게 써버려야겠다. 인풋이 없었는데 아웃풋이 불량한 건 당연한 이치니까, 어차피 망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스미다 간바레’를 외치면서 써 버릇 해야겠다.
2016년 1월 23일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