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좋고 그때는 싫었다

by SeungJae Shin

입사 후 첫 회식자리. 곧 퇴사하는 사수의 송별회를 겸하여 팀원을 포함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 모였다. 덕분에 그간 별다른 친분이 없던 동료들과도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처음으로 받은 질문이 재미있다.


“털보씨, 매일 아침에 머리 손질하고 와요?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언제나 정돈된 가르마와 적당한 컬을 유지하는 내 헤어스타일이 특히 여성분들에게 신기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대수롭지 않은 듯 “아, 저 머리 감고 말리기만 하고 바로 나와요. 반곱슬이라 따로 손질을 안 해도 되더라구요”라 대답. “와, 진짜 부러워!”


이제는 이런 반응이 제법 익숙하다. 여성들이 매일 아침 헤어 스타일링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지 대강 알고, 생머리 혹은 직모를 가진 남성들의 고충도 들은 바 있어서다. 다른 머리를 가져본 적 없으니 이게 얼마나 ‘축복’받은(그래, 무려 축복이란 표현들을 하더라!) 일인지 알 길 없다만, 내심 만족하고 있다. 적은 투자로 높은 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 완전 수지맞는 장사인 게지.


아이러니컬한 것은 어릴 땐 이 반곱슬이 너무도 싫었단 사실. 초딩 시절엔 다들 별 시답잖은 것들로 꼬투리 잡아 친구를 골려 주는 일에 대단히 열성적이고, 동시에 친구들의 놀림에 영양가 없는 가치관을 정립하곤 하지 않나. 충분히 조숙하지 못했던 탓일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몇몇 녀석들이 나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여자 같다는 둥 남자가 파마는 무슨 파마냐는 둥 면박을 줬고, 언젠가부터 그게 부끄러워졌던 거다. 이 얼마나 성차별적이고 미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언동이냐 싶겠지만, 그때의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을뿐더러, 사내 사전에 ‘꾸밈’이란 없다 믿는 촌뜨기였으니, 도리가 있나.


수염도 비슷한 케이스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타인의 코멘트와는 관계없이 나 자신부터 먼저 ‘수염 난 나’를 혐오하기 시작했다는 것. 스스로가 너무너무 싫었던 사춘기 시절, 동급생들에 비해 유난히 거뭇거뭇했던 코밑, 턱밑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증오로 가득 차있었다. 게다가 까만 피부까지 더해졌으니 점입가경, 늘 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동경하곤 했다.


지금은 완전 반대다. 난 내 수염이 마음에 든다. 덤으로 구릿빛 피부까지. 이젠 누군가 수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해도 전혀 괘념치 않는다. “매일 면도하기 힘들지 않아요?”란 물음은 조금 의아할 정도다. 간혹 귀찮긴 해도 이미 습관이 된지 오래라 양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시간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으며, 면도에는 또 그 나름의 쾌감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간지난다.


이처럼 내가 변화해온 지점들을 살펴보는 일은 적잖이 즐겁다. 예전의 털보가 얼마나 못난 녀석이었나 마치 남 얘기하듯 스스럼없이 흉볼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자조, 자학을 즐길 수 있다는 건 변한 나의 모습이 기꺼운 덕분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자기애가 한층 탄탄해졌구나 싶어 산들바람에 이끌리는 파도처럼 저만치서 안도감이 밀려온다.


언제까지 이 만족감이 이어질는지 알 길 없지만, 현재의 상태가 과거형으로 말해질 순간이 가능한 한 늦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때는 싫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니까 스스로가, 지금은 꽤 좋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