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언어에는 힘이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은호의 별명은 곧 그의 이미지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를 뭐랄까, ‘어른’이라 느꼈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수업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어도 분필은 날아오지 않았다. 단지 “은호 속에는 백발노인이 들었나 보다. 저렇게 사색을 하니까 국어를 잘하나?”하는 선생님의 가벼운 핀잔이 돌아올 뿐이었다. 여느 사춘기 소년들과 달리 악다구니를 쓰거나 하지 않고 조곤조곤 간결하게 말하는 버릇도, 어딘지 나른한 기운이 감도는 목소리도 모두 그의 문학성을 강화하는 요소였다. 은호는 그저 만사 귀찮았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꽤 자주 그다지 친분이 없는 여학생들로부터 고민 상담을 의뢰받기도 했다. 그녀들은 은호라면 무언가 답을 줄 거라 믿었다.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은호라면, 비밀은 지켜줄 거라 믿었다. 쉬는 시간에 쪽지를 건네고 가거나 은호의 서랍이나 신발장에 몰래 엽서 비슷한 것을 넣어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메신저로 말을 건다던가 하다못해 이메일을 보내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어쩐지 은호에게는 아날로그틱하게 접근해야 더 의뢰가 수락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한없이 아날로그에 가까워지는 경험이 그녀들에게는 일종의 일탈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말하자면 은호는 감상에 빠지기에는 최적의 대상이었다.
대개의 경우 은호는 완곡하게 거절하는 쪽을 선택했다. 절대다수의 사연들이 은호 본인은 전혀 겪어보지 않았고 짐작조차 불가한 것들이었기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생각했던 탓이다. 그가 마지못해 응했던 상담이래 봤자, 신문배달부가 신문을 던져 넘기듯 어디선가 주워들은 그럴듯한 말을 던지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애늙은이 은호에게도 짓궃은 구석이 없지는 않았고 장난기도 있었다. 어느 날은 그것이 폭발해버렸다.
평소 꽤 예쁘다고 생각했던 옆 반 아이가 은호에게 잠깐 시간이 괜찮냐고 물었다. 묘한 무력감과 다투고 있던 은호는 전에 없이 흔쾌히 옆 자리를 내어주었다. 식빵을 굽는 고양이처럼 스탠드에 앉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법 오래도록 가만히 듣기만 하던 은호는 대뜸, 그녀를 철봉으로 데리고 갔다.
“철봉에 한 번 매달려 봐.”
등교길에 외국인에게 히랍어로 질문을 받은 마냥 당황한 그녀에게 은호는 어서, 하는 손짓을 보냈다. 그녀는 치킨너겟 한 조각을 욱여 넣는 채식주의자처럼 눈을 질끈 감고 철봉으로 손을 뻗었고 바람이 두어번 지나갈 동안 매달려 있다가 내려왔다.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잘 하고 있어.”
멀뚱하게 서 있는 그녀를 남겨 두고 발길을 돌리곤 그녀에게 메신저로 사진을 하나 보냈다. 조용히 쿡쿡대며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감추느라 애쓰면서. 그것은 은호가 자주 가는 책방 ‘하나미치’의 벽에 걸려 있던 글귀였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