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
은호는 유명한 문학소년이다. 그가 헤르만 헤세랄지 셰익스피어랄지 랭보랄지, 아무튼 청춘의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만 같은 문학책을 늘 끼고 다녔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은호는 18살이 되도록 줄글로 된 책은 교과서 이외에는 완독한 일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문학소년이라는 해시태그가 붙게 된 이유는, 우습지만 성적 덕분이다. 은호는 중학생 때부터 여태껏 치러온 모든 국어시험에서 단 한 문제도 틀린 적이 없다. 중 1 여름,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길고양이처럼 불쑥 전학을 온 소년은 유례가 없는 올백 레이스를 이어나갔고, 등장으로부터 정확히 일 년이 지난 시점부터 은호는 학교는 물론 온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치맛바람 좀 휘날린다는 학부모들의 힘이 컸다. 아이들의 성적에 관해서라면 제철과일에 달라붙는 날파리 같은 구석이 있는 그들은 “우리 애 학교에 국어를 진짜 잘하는 아이가 있다더라.”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주고받았다. 그리고 자녀들과 선생님을 동원해 이른바 ‘은호의 비법’을 캐내려 애썼고, 때때로 은호 본인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 곰살맞게 굴고는 했다. 하지만 은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음···, 문제를 많이 풀면 도움이 돼요.”
완고한 주인장과의 에누리에서 패퇴하는 듯 눈을 흘기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칭찬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은호는 어떤 반응에도 괘념치 않았다. 은호로서는 저게 최선의 대답이기도 했고, 얼마간은 쑥스러운 마음도 있었기에 그 순간을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뜨뜻미지근한 은호의 태도 덕분인지 학부모들의 극성스러움은 일 년 이내에 다 사라졌다. 몇 차례 자녀를 곧 학교에 보낼 선생님들이 은호를 불러 이리저리 배회하다 넌지시 “정말 특별한 방법이 없니?”하고 묻는 정도가 다였다.
은호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이 가엽다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 나름의 절박함이겠거니 이해하는 편에 가까웠다. 반면 동급생들이 자신의 성적에 집착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가엽고 우습다고 생각했다. 별별 이상한 소문이 다 있었는데 그중 몇은 은호의 출생에 관한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유명한 작가의 숨겨 놓은 아들이라거나, 은호의 부모가 태교를 위해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섭렵했다거나. 그렇게 한바탕 말의 소요를 지나치고 은호는 네 글자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문학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