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씨에게

by SeungJae Shin

안녕하세요 패터슨씨, 저는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는 신 아무개라고 합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편지를 받는 일은 처음이시리라 짐작합니다.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알지만,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 생겨버린 당신의 팬들을 대표한 팬 레터라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찌 그들을 대표하겠습니까마는, 어쨌거나 제가 당신의 팬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당신이 이 편지를 손에 쥐었을 때, 당신이 귀가할 무렵이면 예외없이 기울어져 있었던 우편함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마빈의 장난기는 여전한지요? 아, 설마 마빈이 범인이었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셨던 건가요? 이런...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곳이 당신의 서재인지, 아니면 매일 아침 씨리얼을 먹는 식탁인지 혹은 새벽 6시 무렵이면 눈을 뜨는 침대인지도 궁금합니다. 맥주 한 잔과 함께이실 수도 있겠네요. 체스를 좋아하는 주인아저씨께, 패터슨시의 ‘로미오와 줄리엣’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길 청합니다.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내 로라는 어땠나요? 아직 이 편지를 공유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감히 예상을 해본다면... 이른바 ‘팬 레터’를 받았다는 사실이 남사스러워 혼자만 알고 계시다가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하고 무심코 던지는 그녀의 물음에 그제서야 순순히 “사실은 말이야...”하고 이야기를 꺼내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 로라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방방 뛸지도, 할리퀸 기타를 들고 와 당신을 위한 노래를 만들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족이 길었습니다.


제가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펜을 들게 된 이유는, 당신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글쓰기에 대해 항상 갈증을 느낍니다. 압박감이기도 합니다. 딱히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생계가 위태로워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래도 정말 괜찮은가’하는 조급함이 밀려옵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때, 제가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방법은 글을 쓰는 일밖에 없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천성이 게으른 탓에 이 핑계 저 핑계를 찾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꾸준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가장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당신은 눈부십니다. 버스의 시동을 걸기 전,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후의 저녁까지 당신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습니다. 저는 그 원동력이 당신의 열린 태도에 있다고 느낍니다. 대동소이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그것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아가 그 속에서 매 순간 새로움을 찾아내는 삶의 태도 말입니다.


버스를 몰며 드문드문 들려오는 승객들의 이야기에 미소 짓고, 단골 바의 같은 자리에 앉아 손님들을 관찰하고 담소를 나누고, 언제나 색다른 꿈을 꾸는 예술가 아내를 향해 있는힘껏 맞장구를 치고, 우연히 마주친 세탁소 래퍼에게 박수를 보내고, 길에서 맞닥뜨린 비련의 주인공에게 안부를 전하는 당신의 면면은 눈물이 나도록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사람인지라, 비밀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마빈에게는 한마디 하시더군요. 그마저도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한편으로 당신은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하게 구축해 온 사람이구나 느끼기도 했습니다. 장난감 총으로 난동을 피우던, 물론 당시에는 장난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로미오를 간결한 동작으로 제압하는 모습에서는 군인 시절의 흔적이 엿보였고, 갑작스레 찾아온 버스의 고장에 능숙하게 대처할 때는 직업인으로서의 철저함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잊지도 잃지도 않고 몸과 마음에 켜켜이 축적해왔음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작년 봄부터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는 방송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유명한 시인들과 교류하고 친우가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 없이, 예술가연 하는 법 없이,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면서 묵묵히 창작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패터슨, 당신처럼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가까운 곳에 패터슨이 많이 있었네요. 새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사카에서 온 시인에게 받은 노트는 잘 사용하고 계신가요? 이미 수많은 시들이 쓰여져 있겠지요. 무엇을 소재로 쓰셨나요? 무엇이든 쓰셨겠지요, 당신이라면. 당신의 삶이 남들이 보기엔 지루한 공전일지 몰라도 당신은 그렇게 여기지 않으니까,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을 기꺼이 감당하며 그속에 묻어나는 아주 미세한 파문에 흔쾌히 눈길을 내어 주는 사람이니까. 당신의 신작이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아니 딱 두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당신을 늘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처럼, 늘 쓰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지켜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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