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절규남자

후지산 여행기, 셋

by SeungJae Shin

영문 모를 주문부터 외워야겠다. ‘후지야마’에 올라 ‘타카비샤’를 타고 ‘도돈파’하니 ‘전율미궁’ 같은 세상이라도 ‘에에쟈나이카’!


하늘이 도왔다. 거짓말처럼 태풍이 물러가고 비가 그쳤다. 해가 쨍쨍했다. 먹구름이 침을 튀기며 잠깐 심술을 부렸지만 결국 정의가 승리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간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정의인가? 어트랙션을 향한 나의 열정이다.


바로 어제 후지큐 하이랜드의 4대 절규머신과 전율미궁까지 모두 클리어했다. 기적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일기예보도 종일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하늘은 나를 선택했다. 덕분에 개장부터 폐장까지 장장 13시간 동안 원 없이 즐겼다.


같은 방에 묵고 있던 누군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좀 더 잘까 싶었지만 창밖을 보니 쾌청한 날씨여서 후다닥 씻고 길을 나섰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후지큐 하이랜드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7시 30분경 입구에 도착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미 백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잽싸게 후미에 자리를 잡았다. 점점 불어나는 인파. 문이 열리는 타이밍이 다가올수록 어딘지 모르게 현장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단순히 해가 뜨거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긴 하다.


절규우선권을 구입해 중간중간 여유를 갖고 휴식을 취하며 놀이기구들을 정복할 계획은 그야말로 백일몽에 불과했다. 첫 휴가 때 휴게소에서 매점으로 달려가는 신병들을 본 뒤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나도 달리고 있었다.


4대 절규머신 중 가장 먼저 공략한 것은 ‘후지야마’. 후지야마는 후지Q를 대표하는 롤러코스터로 이른바 ‘King of Coasters’로 불린다. 운 좋게도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하루의 시작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다음 타깃은 좌석이 360도 회전하는 4차원식 롤러코스터 ‘에에쟈나이카’. 이 순간부터 인고의 세월이 펼쳐졌다. 평균 대기시간 2시간 30분. 1.8초 만에 최고시속 172KM까지 가속해 무중력을 경험케 하는 ‘도돈파’와 최대낙하각도 121도로 기네스에 등재된 ‘타카비샤’까지 탑승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4분을 즐기기 위해 8시간 이상을 기다린 것이다.


피로를 느낄 새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귀신의 집, ‘전율미궁’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안전을 위해 혼자서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미궁에 갈 거면 나도 같이 좀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그런 나를 구원한 것은 군마 현에 거주하는 겁쟁이 청년 후지모토. 우리는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기대에 부푼 채로 2시간 이상을 대기한 뒤 함께 미궁을 돌파했다. 이로써 목표 달성! 감격에 겨운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폐장을 알리는 음악을 들으며 회전목마에서 셀카를 찍고, 기념품 가게에서 나에게 ‘절규남자’라는 네 글자가 가슴팍에 박힌 티셔츠를 선물했다. 불꽃남자 정대만 부럽지 않은 절규남자 신승재.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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