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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Aug 30. 2019

#1. 잘하지 못하니 매일

2019.08.30.

2012년 12월 7일 첫 화가 업로드된 팟캐스트 <영화식당>이 오늘 400회를 맞이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정확히 2,458일 만이다. 대학생 넷이서 단출하게 시작한 이곳에 그간 어림잡아 칠십여 명이 패널 또는 게스트로 참여했고, 현재는 열댓 명의 직장인들이 합심해서 운영해나가고 있다. 백일째 되던 날에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야!”하는 메시지를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한 결기 어린 글을 써젖혔던 기억이 나는데 참, 다시 읽어보니 무슨 전공투 선봉장의 출사표를 보는듯해 간담이 서늘하다. 창피해서.


이따금 멤버들끼리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다.”라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이게 그리 대단하거나 신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생활의 일부가 된지 한참이기도 하거니와, 왜인진 모르겠지만 여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다. 옛 성인들의 말씀을 빌려오더라도 끝이 나려거든 멀고도 멀었다. 가뜩이나 시작은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는데 아직 창대함의 ㅊ자도 맛보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순간은 더러 있었다. 최근에도 잊지 못할 경험을 했는데, 2017년부터 두 친구와 함께하고 있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의 공개방송에 <영화식당> 청취자가 방문한 것이다. 무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영화식당>을 듣고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다는…. 씩씩과 알리스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한목소리로 “우리가 그의 유년을 망친 것 아닐까!?”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둘의 표정은 안 봐도 싱글벙글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사후적으로라도 그와 그리고, 혹시나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또 다른 그들의 유년을 망쳐서는 안되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안 해야 할 것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해야 할 건 또 해야 하니 머리를 굴려본다. 결론은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가 잘하는 걸 열심히 즐겁게 해나가면서, 어느 한 구석이라도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일 테다.


얼마 전 한 술자리에서 각자의 장기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모두 여러 방면에서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그래서 “그러게, 나는 뭘 잘하나…”하며 망설이다가, “아, 턱걸이는 좀 하는 것 같긴 한데…”하고 얼머부리다, 결국 이렇게 답했다. “잘한다기보다는 매일 해요.”


그러고 보니 꾸준히 하는 건 좀 잘하는 것도 같다. 턱걸이도 세 달 가까이 매일 하고 있고, 일일일팩도 어느덧 석 달째, 가계부 앱을 쓴지도 대충 팔 년은 넘은 것 같고, 2015년 4월부터는 월급도 꼬박꼬박 공백 없이 타고 있고, 자전거는 예나 지금이나 내 제1 교통수단이고, 두 개의 방송도 쉼 없이 이어가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위에 나열한 것들보다 조금 손대다가 포기한 게 훨씬 많을 것이다. 그보단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 더더더 많을 테고. 그래서 결론은 뭐냐, 오늘부터 일기를 써보겠다는 것이다. 잘하는 것도 단련하지 않으면 녹슬기 십상이니까, 꾸준히 진득하게 아주 짧은 글이라도 매일 써보겠다는 것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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