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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Aug 31. 2019

#2. 슈퍼 우량주 형제들

2019.08.31.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와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 남짓. 얇은 이불을 부둥켜안고 다시 잠을 청해보려는데 외려 정신은 말똥말똥 해졌다. 지난 한 주의 피로는 분명 코끼리똥 정도는 됐던 것 같은데, 그래서였을까 수면의 질은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몸은 고단하고 잠은 안 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에라 이럴 거면 수영이나 가자, 하고 자리를 박찼다.


아주 어릴 적엔 이렇게 어정쩡한 시간에 깨서 갈피를 못 잡을 땐 한창 꿈나라인 누나에게 칭얼칭얼 대기도 했는데 그것도 참 고릿적 얘기가 되어버렸다. 두 살 터울의 하나뿐인 누나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는 각자의 방에서 생활했으니 어휴,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거야.


누나와 소원해진 뒤로 가끔 형제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변의 남동생들 중 절대다수가 형에게 극악무도한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였지만, 단체로 스톡홀롬 신드롬에 걸린 건지 뭔지 그리 얻어 터지면서도 다들 자신의 형을 졸졸 따라다녔다. 실리적인 측면에서는 약육강식의 세계, 특히나 나이 한 살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학창시절에 형이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빽이기도 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받던 형제들도 성인이 되니 돈독해지는 모습도 심심찮게 봤는데 그런 관계의 변이도 나로서는 미지의 대상이었다. 맞다, 과거형으로. 왜냐하면 어느샌가 내게 ‘형제’라고 불러주고 또 내가 ‘형제’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여럿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이 ‘브라더후드’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진심으로 친여동생이라 여기는 녀석들도 두어명쯤 된다. 주민등록등본이 다이소 영수증 보다 길어질 지경이다.


오늘도 총 네 명의 형제들을 만났다. 먼저 작업실 ‘각방’의 멤버인 21g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있는 ‘각방 클리닝데이’를 맞아 같이 대청소를 했고, 대학 새내기 때부터 막역하게 지내는 장왕자, 선라이즈를 초대해 피자와 치킨을 뜯으며 롤챔스 결승전을 관람했다. 그 자리에서 둘에게 James를 소개하기도 했다. 장왕자가 사온 위스키로 짠짠짠. 언젠가 이 순간이 도원결의로 회고될 날이 있길 바란다.


그렇게 세 명의 형이 한자리에 있으니 근처 미군 부대로 웃장 까고 달려가고 싶을 만큼의 기세가 생기는 듯, 까지는 아니었지만 뭔가 좀 의기양양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때리지도 않고, 좋은 사람들이다. 대략 반의 반나절 정도를 보낸 뒤 우리는 가까운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물론 악수를 나누고.


배도 씨도 다 다르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귀한 인연들이다. 거 어데 배씹니꺼,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피 대신 함께한 시간과 사랑으로 연결된, 흔들릴지언정 쉽사리 부서지진 않을 인생의 부표 같은 이들이랄까. 먼 훗날 그들이 부도수표로 판명 나더라도 찢지 않고 고이 간직할 요량이다. 말로가 어찌 되든 이미 나라는 변변찮은 인간의 분에 차고 넘치는 수익을 안겨준 슈퍼 우량주들이니 말이다. 뭐, 빚보증은 죽어도 안 설 거긴 하지만….


“천지가 복숭아 밭이로다. 그러니 내 형제가 돼라.” 갑자기 삼국지랑 원피스를 콜라보 해보고 싶었다. 무시해도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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