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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02. 2019

#3. 이래서 매직 아워

2019.09.01.

작년 이맘때쯤 연애소설 비슷한 무언가를 끄적였던 적이 있다. 제목은 ‘쓰나미 주의보가 흘러나오던 여름밤’이었고 대략 8화인가 9화 정도까지 쓰다가 그만두었다. 그 소설의 남자 주인공 이름은 ‘은근히 호구’를 줄여서 만든 은호였고 외모는 일본의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를 모델로 삼았다. 무지막지하게 잘생겼는데 어딘가 어설프고 나사가 풀린듯한 그의 인상을 좋아한다.


츠마부키 사토시 하면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텐데, 내게는 그보단 드라마 <I.W.G.P>나 <런치의 여왕>에서의 어리바리한 풋풋함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의 최고의 연기는 무엇이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미타니 코키의 <매직 아워>에서의 연기라고 답할 것이다.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보스를 속이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빙고 역을 능글맞은 코미디로 기가 막히게 소화했다. 어쩌면 그 영화를 찍었던 시기가 그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배우로서의 매직 아워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대략 서른 즈음의 생물학적인 나이와 십여 년 정도 쌓인 연기 경력으로 특유의 소년스러움을 내보였다가 가렸다가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 같았달까.


그 시절 츠마부키의 얼굴처럼, 매직 아워는 분명 사람의 넋을 빼놓는 무언가가 있다. 길어야 이삼십분에 불과한 짧은 동안 가장 따뜻한 색에서 가장 차가운 색으로, 가장 붉게 빛났다가 가장 푸르게 침잠하는 말 그대로 스펙터클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가 괜히 미츠하와 타키에게 딱 그 순간만을 허락했겠는가.


오늘 마주한 매직 아워도 굉장했다. 망원 한강공원의 계단에 걸터앉아 세상의 색이 변하는 것을 감상했는데, 2019년 하반기의 시작을 격려라도 하려는 건지 뭔가 신이 있는힘껏 기교를 부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대화를 나누다가도 자꾸만 말을 멈추고 하늘에 시선을 두게 됐다. 신께서 이리 용을 쓰시는데 주목해드리는 것이 인간 된 도리 아니겠는가. 종교는 없다만.


단순히 신의 노력만으로 그 순간이 아름다웠던 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그냥 오늘 하루가 다 즐겁고 좋았으니까, 그때의 하늘색이 똥색이었어도 구릿빛으로 태닝한 신도 섹시하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 호날두의 피부를 가진 신이라, 한국에선 그리 환영받지 못하겠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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