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Sep 02. 2019

#4. 일기란 무엇일까

2019.09.02

삼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내기에서 삼세판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한국인에게, 삼점슛으로 농구의 패러다임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어버린 NBA의 슈퍼스타 스테판 커리에게, 깃털처럼 날아올라 세바퀴를 돈 뒤 구름에 발을 디딘 듯 사뿐히 내려앉는 연느에게 그리고, 꼴랑 네 번째 일기를 쓰며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나에게….


처음으로 가위에 눌려 잠 못 이루던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분명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에 가위눌림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점심시간 도시락을 까먹으며 어떤 녀석이 “가위 안 눌러봤나?”하며 말을 꺼냈고, 엉겁결에 가위의 존재를 인지한 후로부터 오래도록 난 주기적인 가위눌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고 으름장을 놓고 싶지만 언젠가부터 연락이 두절된 홍가 놈아, 잘 사냐.


인지가 실재를 불러온 것인지, 실재했으나 인지되지 않아 없는 셈 쳤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비슷하다. 이 사자성어가 결심한 바를 사흘도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누군가 직접 목격하고 지어낸 말인지, 아니면 이 말이 나흘로 가는 문턱을 하늘까지 높여버린 것인지, 증명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 다겠지만, 아무튼.


인지가 실재를 만들어냈든 실재가 인지에 선행했든 뭐든, 결국 중요한 건 어쨌거나 내가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하게 되리라는 사실일 것이다. 오늘 아침 식탁에 예쁘게 놓인 복숭아와 골드키위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과일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대략 사 년 전부터 매일 아침으로 챙겨 먹고 있는 제철과일과 견과류, 우유 한 잔, 블루베리가 얹힌 요거트는 무엇일까. 이건 왜 사흘은 무슨 천오백일이 다 되도록 내가 잠들었다가 눈만 뜨면 차려져있는 것일까. 내 와이셔츠는 왜 늘 빳빳하고 우리집 화장실 거울은 왜 늘 반짝일까. 요정의 소행일까? 나는 왜 이 나이가 되도록 요정의 비호 아래 살고 있을까.


이번 주말엔 조조영화나 보러 가야겠다. 요정들이랑. 끝.


매거진의 이전글 #3. 이래서 매직 아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