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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16. 2019

#12.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랴

2019.09.15.

영화 <보이후드>의 주연인 엘라 콜트레인은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촬영분을 보지 못했고, 영화가 완성된 후 시사회에서 처음으로 스크린 속 자신과 마주했다고 한다. 상영 내내,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그게 참 부러웠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멱살을 잡고 “내 유년도 이렇게 좀 남겨주지 그랬냐”라고 드잡이를 하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 지금 내 모습을 사진으로든 영상으로든 기록해주었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은 예기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드물게 찾아온다. 드문 것은 대체로 귀한 법, 한동안 없을 귀한 연휴의 마지막 날답게 참으로 오랜만에 그 감각을 맛보았다.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 녹음을 위해 풍문과 능청의 신혼집 ‘취합정’으로 따릉이를 타고 가는 길. 망원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사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름이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 앙탈이라도 부리는 듯한 더위,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는 가을의 서늘함이 묻어나는 날씨. 주변 건물들의 키가 낮은 덕에 하늘과 구름이 유독 넓어 보이는 시야. 약간의 땀 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자전거가 자아내는 마파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귀로는 솔루션스의 새 앨범이 재생되고.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지금 내 모습을 남겨주었으면.


이 욕망의 정체가 무얼까 고심해본다. 결국은 자기애가 아닐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부러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James와 관석이 사진을 찍는 이유도 결국은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


형들에게 어깨너머로 사진에 대해 배운지 어언 4년쯤 되었을까, 요즘에야 조금씩 사진을 찍고 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건 어쩌면 내가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내 삶을 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인 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자꾸만 담고 싶어진다. 눈에도 카메라에도 마음에도. 그러니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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