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Sep 17. 2019

#13. 아주 특별한 하루

2019.09.16.

기묘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걸 불길하다고 해야 할지 상서롭다고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오늘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자꾸만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무방비의 성인에게 똥침을 놓다니, 연휴 뒤의 월요일이란 제법 상스러운 자식이군 되뇌며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길을 나섰다. 그래 다 기분 탓이지, 그래봤자 별일 없을 거야, 하면서.


그런데 정말로 별일이 없었다. (요즘처럼 날씨가 쾌청한 시기에는) 언제나처럼 근처 따릉이 정류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날씨 및 계절과는 전혀 무관하게 항상)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는 만원이었으며 (이따금 아닐 때도 있지만 그런 예외는 차치하고) 회사의 일은 바쁘고 고되고 갑작스럽고 예고 없이 던져졌다. 보통의 날과 같이 점심을 걸렀고 지극히 평범한 수준으로 야근을 했으며, 늘상 그래왔듯 마무리되지 못한 업무를 남겨둔 채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지친 몸을 가누며 귀가해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니 마롱이가 꼬리를 치며 달려 나왔다.


누구나 겪는 밥벌이의 고달픔과 누군가는 알지 못하는 행복이 겹쳐지는 순간. 별일이 없었던, 그냥 그랬던 보통 혹은 그보다 약간은 이하에 가까운 하루가 수면 위로 올라와 깊은숨을 들이마시게 되는 순간이다.


조금의 불행쯤은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존재의 기묘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게 기묘함을 선사하는 면면들은 어떤 이들인지를 헤아려본다. 제법 많다. 커다랗게 떠오르는 큰바위 얼굴도 몇 있고, 저 멀리 반짝이며 시선을 뺏는 조약돌도 더러 보인다. 나쁘지 않은 삶이다.


그래도 내일은 조금만 더 특별했으면! 아침에 자전거를 타며 출근할 수 있기를, 온전한 저녁을 만끽할 수 있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딴 헛소리를 일기로 쓰는 일이 없기를…. 끝.


매거진의 이전글 #12.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