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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12. 2019

#11. 축구는 늘 짜릿해

2019.09.11.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무엇일까. 관람자, 서포터의 입장에서라면 필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승리를 거듭해 결국 우승을 쟁취하는 모습, 완장을 찬 주장이 힘차게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내 새끼’들이 눈부신 표정으로 흥 넘치는 점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일 것이다.


그 희열을 회상해본다. 아득하다. 대체 언제였더라…. 그래, 2004년이다. 내 마지막 사랑 아스날이 무패로 시즌을 마감하던 그때다. 짧은 영광 뒤에 찾아온 출구 없는 암흑기에 지쳐 서포팅을 접은 지 어언 6년. 앞으로도 웬만해선 다시 챙겨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니 그 짜릿함은 온전히 추억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겠다.


그렇다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라면 어떨까. 선수가 아니라 그냥 동네에서, 동호회에서 취미로 축구를 즐기는 사람의 입장. 두말할 것 없이 이길 때 짜릿할 것이고 골을 넣을 때도 짜릿할 것이고 멋진 플레이를 하고 또 보는 과정도 짜릿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짜릿을 넘어 전신과 뇌까지 찌릿찌릿하게 하는 최고의 순간은 바로, 두구두구, 경기가 끝난 뒤 축구화와 양말을 벗고 잔디에 다리를 쭈욱 뻗는 순간이다. 만약 그때 시원한 맥주 한 캔이 옆에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그 경험은 못해봤다.


오늘 거의 7~8년 만에 축구를 했다. 용산 아이파크몰 10층에 위치한 ‘아디다스 풋볼 더 베이스’라는 곳에서였다. 선선한 밤공기와 필드 사이로 비치는 서울 야경에 상쾌함을 느꼈던 것도 잠시, 시작한 지 십 분 만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고 왼쪽 갈비뼈가 아파왔다. 나름 체력 관리를 한다고 하는 편인데 역시나 축구는 격렬한 운동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듯 실력이 나빠도 몸은 개고생이다. 특히 축구는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정말 축구를 드럽게 못하는데,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열심히 뛰는 거라 민폐 끼치지 않게 남들보다 한발 두발 더 뛰려 해도 요령이 없으니 헛되이 체력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진심으로 공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나도 마음만은 베르캄프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재밌는 시간이었다. 15분씩 끊어서 총 6~7 게임 정도를 한 것 같은데 두세 게임은 이겼고 (골키퍼로) 나름의 활약도 하고 골도 한 골 넣었다. 이만하면 됐지 뭐.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 내 발을 옥죄던 굴레들을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짜릿저릿찌릿함도 맛보았다. 진짜로, 이만하면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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