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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Jae Shin Sep 26. 2019

#18. 세상에서 제일 가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2019.09.25.

나만 알고 있는 비밀 하나를 공개하고자 한다. 이것만큼은 눈에 흙이 들어가고 육신이 토양과 하나가 될 때까지 홀로 간직하려고 했던 것인데, 정말로 모비딕만한 마음을 먹고 밝히기로 한다. 혜화동에는, 클레오파트라도 손을 흔들 만큼 멋진, 세상에서 제일 가는 시집 서점이 있다.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재치와 냉소 그 어딘가 혹은 그로부터 아득히 머나먼 곳에 닿아있을 것만 같은 멋진 이름을 가진.


그리고 그곳에선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갈지도 모르는 시를 쓰는 시인이 손님을 맞이하고, 대한민국에서 글 깨나 쓴다 하는 사람들은 다 한 번씩 낭독회나 공개방송 등을 통해 독자들과 만난다. 대부분은 멀쩡한 정신으로 아주 가끔은 세 얼간이 아니, 세 주정뱅이와 함께 만취한 채로. 그래도 괜찮다. 그땐 손님들도 다 같이 취하니까.


위트앤시니컬, 줄여서 윅이라 불리는 그곳에 방문하면 늘 책을 한 아름 품에 안고 귀가하게 된다. 일단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너무너무 많고,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갈지도 모르는 시를 쓰는 시인, 아 너무 길어서 그냥 정체를 밝혀야겠다, 유희왕의 책 추천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완도 뛰어난데, 이따금 주취상태의 누군가에게 책을 판매하는 신공을 벌이기도 한다나 뭐라나. 주취자는 그것마저도 좋은 추억으로 여기고 있다는 후일담이 있다.


책도 책이지만 유희왕과의 대화도 윅을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여유가 부족할 때는 후다닥 근황을 공유하는 정도, 제법 느긋할 땐 근황 공유를 기일게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과 말들을 덧붙이는 정도. 오늘은 윅에는 낭독회가 나에게는 스터디가 예정되어 있어 대략 한 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어딘지 번잡스러운 가운데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대화도 썩 재밌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도 좋았다. 이제는 누나라고 진짜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박소란 시인도 보고 한 출판사의 대표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공개방송을 하면서 얼굴을 익힌 친구들도 보고. 괜히 내가 윅의 일부분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주제넘게 뿌듯했다. 아름다운 공간의 일부가 되는 건 참으로 기꺼운 일이다.


주변에 윅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많이 데려가서 유희왕도 소개하고 시점(詩占)도 봐주면서 인싸 노릇을 하면서 으쓱거리고 싶다. ‘시집 옆 술집’도 가능한 오래도록 그곳에서 했으면 싶다. 왜냐. 윅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시집 서점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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