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Sep 27. 2019

#19. 그렇게 껌딱지가 된다

2019.09.27.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평생 동안 결코 떨어질 수도 없고 떨어져서도 안 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살아는 있는 건지,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은 있는 것인지 그 무엇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소문을 해서 그의 행방을 쫓거나 거리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거나 SNS에 글을 올릴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니, 미치고 팔짝 뛰어도 이신바예바의 곱절은 더 뛸 지경이다. 마롱이 이야기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 이는 곧 마롱이의 유일한 사랑이자 소울메이트인 아버지가 부재하다는 말이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닐 텐데 이런 상황이면 마롱이는 늘 비슷하게 반응한다. 다른 가족 품에 안겨 있다가도 조그마한 소리가 들릴라치면 퍼뜩 고개를 치켜세운다. 풀이 죽을 대로 죽은 채로 현관에 누워있는가 하면 먼 산을 바라보며 골똘해지기도 한다.


둘의 관계를 보면서 종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떠올린다. 정말 단순하게 요약하면 부모 자식 간에 나눈 것 중 피와 시간 중 무엇이 더 결정적인가를 묻는 영화인데, 영화는 시간의 손을 들면서 막을 내린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롱이도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마롱이가 처음 우리 가족이 되었을 때에는 나를 가장 좋아했다. 잠도 항상 내 방에서 함께 잤고, 다른 이보다 내가 귀가했을 때 월등하게 더 신이 나 보인다는 가족들의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사랑의 무게추는 아버지에게 기울었는데, 그건 그가 마롱이의 산책을 전담하면서부터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와 사회초년생이었던 누나는 거의 매일 늦은 시간에 귀가를 했고 엄마는 집안일과 기타 취미 생활로 인해 마롱이를 돌볼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뭇 아저씨들이 그러하듯 결국 마롱이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아버지가 되었고, 마롱이는 그렇게 (아버지) 껌딱지가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주 7일을 출근을 하는 사람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데다가 설상가상 나이 열셋에 양친을 여의고 육남매를 홀로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일을 했던 그는 쉬거나 노는 법을 익히지 못했고, 나와 누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도 가난을 대물림하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이 매우 강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는 누나와 나에게 주고 싶고 나누고 싶었던 사랑의 시간을 마롱이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무뚝뚝한 안동 사나이가 마롱이에게는 월드 스위티스트 가이가 되고 여행 중에도 틈틈이 마롱이의 안부를 묻는 것을 보면 말이다. 걱정 말고 그곳 경치나 좀 즐기실 것이지.


그래도 참 다행이다. 그가 더 이상 고독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마롱이가 나와 누나 몫의 효도를 다 하고 있으니. 내가 밖으로 맘 놓고 나다닐 수 있는 것도 다 마롱이 덕분이다. 고맙다. 간식 하나 더 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8. 세상에서 제일 가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