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들여다보기 - 2

능동 집중의 침투적 특성

by 이정표
지난 화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수동 집중(도취, 매혹)이 대상의 표면에 중첩되며 쾌감을 발산하는 반면, 능동 집중은 대상 속으로 스며들며 의미를 길어 올린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번 화에서는 능동 집중에서 비롯된 공감적 관심이 대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려 합니다.

회색 글씨는 중복이니 읽으신 분들은 그냥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






책 읽는 상황을 예로 들어가면서 설명해 보기로 하자. 잘 알다시피, 책은 종이 위에 인쇄된 개별적인 문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자들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하나의 상징적인 기호에 불과하지만, 독자의 눈에는 이미 일정한 뜻을 지닌 단어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읽는 독자는, 마치 개별적인 소리들의 연쇄에서 하나의 선율을 감지해 내듯, 각각의 단어가 환기하는 자신의 기억을 연쇄적으로 끌어 모아 융합시킴으로써 책 속에 담긴 의미를 재구성해내게 되는데, 이와 같은 기억의 융합 및 심화 과정에 동원되는 태도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능동 집중이다.


독자는 이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기존 기억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게 되며, 이를 통해 결국 책의 정신, 혹은 저자의 정신 그 자체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마치 책이 표출되어 나온 원천을 향해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이런 예시만으로는 물질적인 것 배후에 내재된 정신적인 것을 드러내는 능동 집중만의 독특한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그 안에 든 정신적인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능동 집중이란 이 태도의 본성을 뚜렷이 드러내려면, 물질성의 표층을 따라 수평적으로 진행되는 위 과정에다 새로운 축 하나를 더 도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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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같은 책을 반복해서 정독한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자. 그는 이미 한번 접한 내용임에도 처음 읽을 때와 거의 같은 수준의 주의력을 책에다 쏟아붓는다. 그러면 그는 아마도 그 책을 훨씬 더 깊이 있고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부 내용 파악에 소모되던 주의력이 그 내용에 대한 기억의 형태로 환기되어 추가로 기울여 넣는 주의력을 뒷받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아마도 표면적 내용에 대한 기억을 타고 의미의 심층으로 번져나가 더 깊은 의미의 층을 훑고 지나갈 것이고, 이와 같은 관심의 연쇄는 그의 눈앞에 전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숙성된 의미의 총체를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기억의 형태로 저장되었다 되살아난 주의력 덕분에 대상의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책을 의도적으로 매우 느리게 읽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을 향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으면서, 마치 관심으로 문장을 데우듯, 천천히 글을 읽어나간다면, 문맥상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된 여분의 주의력이 심층 의미를 향해 밀고 들어가며 한층 더 풍부하고 생생한 의미를 드러내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일정시간 동안 지속될 경우, 당사자의 의식이 책의 표면으로부터 서서히 물러서면서 문장 저편에 자리 잡은 의미의 총체를 거의 내려다보다시피 하게 될 것이다. 일단 이 정도로 주의력이 모아진다면, 길게 늘어서있던 의미는 이제 단번에, 덩어리째 인식되기 시작할 것이고, 책을 읽는 당사자는 물질적인 표면을 다소 우회하여 책의 심층부와 직접 교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아예 책을 읽다가 멈춰 서서, 난해하고 함축적 의미를 지닌 특정 구절의 의미를 묻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마도 당사자는 일정시간 지속된 침묵과 긴장 끝에 그 구절의 함의 전체를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가만히 관심을 기울이며 기다리는 행위만으로도 완전한 무지에서 완전한 이해로의 비약이 가능한 것이다.



003-20260110-005828.jpg 관심은 집중되면 집중될수록 투과성이 높아진다.(출처: pixabay)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고도로 집중된 주의력이 함축된 의미의 총체를 단번에 훑고 지나가며 그 전체를 한눈에 포괄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모여드는 주의력의 압력에 의해 거친 의미의 갈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 의미에 대한 기억 위에 부가된 주의력에 의해 한층 더 섬세한 의미의 갈래가 전개되는 그 전체 과정이, 미리 집중된 강력한 주의력에 의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의미의 심층을 향해 단번에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 현상은 주의력의 강도에 따라 드러나는 의미의 층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한 예로서, 능동 집중의 침투적 특성을 가장 뚜렷이 부각시켜준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능동 집중의 원리가 뜻을 담고 있는 글귀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질적인 것 배후의 정신적인 것을 드러내는 능동 집중의 원리는 현실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사물과 경험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실제로, 일상적 현상들이 불러일으키는 습관적 인식 너머로 고개를 돌린 채 고요하고 무사 심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본다면, 그 전체 사건들의 배후에서 어떤 정신적인 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을 에워싼 온갖 현상들도 어느 정도 책처럼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경험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지는 것도, 주변 현상에 대한 사색과 탐구가 가능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종류의 인식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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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표층 현실 배후에 내재된 그 정신적인 것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다시 말해 책에서 의미에 해당되는 것은 실제 현실에서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그것은 아마도 주로 개별 현상들 배후에 내재된 질서원리, 법칙 등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개별 현상 전체를 일시에 포괄하면서 관통하는 배후의 질서, 그것이 바로 일상적 경험들 속에 내재된 ‘의미’ 일 것이다.


이 원리, 또는 법칙은 마치 생명체의 과도 같은 것으로, 표층 현상들의 중심부에서 그 전체를 조화롭게 하나로 통합시켜 준다. 그러니까 결국 이 경우에도 능동 집중을 통해, 책을 이해할 때와 마찬가지로, 거칠게 분산된 물질적 표층에서 조화롭게 합일된 정신적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능동 집중의 태도를 취하는 당사자가 그 원리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내 놓는데서 그치는 건 아니다. 그는 그 원리를,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일부로 흡수해 들인다. 즉, 그는 그 원리를 기억의 형태로 내재화함으로써 기존의 인격 원리를 풍부하게 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마치 주체의 내면으로부터 새로운 생명 원리가 탄생하기라도 하듯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보면 능동 집중이 인격의 중심을 잠재우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깨어나게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상 인식을 매개로 솟아나 주체 인격에 첨부되는 그 원리가 생명체의 정신이나 혼과 닮아있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면, 능동 집중이 수동 집중과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006-20260110-005828.jpg 사실 원리를 흡수해 들인다기보다... 대상 인식을 거울삼아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원리를 기억해 내는 것에 더 가깝다.



사실 능동 집중의 태도를 취하는 당사자는 외부 환경의 영향력에다 자신의 의식을 내맡기기는커녕, 외부 현상의 원리를 드러낸 뒤 그것을 내재화하곤 하는데,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피최면자의 의식을 넘겨받는 최면술사의 모습과도 상당 부분 닮아있다. 원리를 내재화한다는 건 사실상 외부 환경으로부터 그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위임받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아마도 피최면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면술사처럼 그 원리에다 자신의 의지를 부과하면서 그 원리의 현현체, 또는 몸체에 해당되는 외부 현상들을 다스려나가기 시작할 것이고, 이를 통해 외부 현상에 휘둘리던 예속 상태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작용을 받는 상태에서 작용을 가하는 상태로 점차 이행을 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능동 집중이 당사자의 자율성까지 함께 증대시켜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적인 각성과 고양에 따른 예속으로부터의 자유, 이것이 수동 집중과 대비되는 능동 집중의 기본적인 효과이다.


만일 이 과정이 그 극한에 이르기까지 중단 없이 이어질 수 있다면, 그의 의식은 모든 사물과 생명의 원리를 단번에 포괄하며 그 모두를 조화롭게 다스리는 궁극적 주체성의 지점으로까지 끌어올려지게 될 것이다. 의식적 각성 수준의 심화, 즉 ‘상기’의 과정을 통해 물질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단 이 능동 집중을 의식, 또는 생명의 상승 운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생각이다.



#능동 집중 #수동 집중 #상승 운동 #하강 운동 #상기론 #집중의 의미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고 올 한 해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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