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들여다보기 - 1

아래로 향하는 집중과 위로 향하는 집중

by 이정표



3장

상승과 하강의 형이상학



“‘없음’만이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갈 수 있다.”
-노자, 『도덕경』 43장




지금쯤이면 집단의 구성과 관련된 의문점들은 상당부분 해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는 도취와 매혹이란 현상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느라 본성상 이런 성향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독특한 유형의 집단 하나를 사실상 한편으로 제쳐두어야 했다.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가치 집단, 즉 종교 집단이 형성되는 방식을 충분히 포괄적으로 해명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집단을 이렇게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이들 집단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집단적 각성 경험을 그 토대로 하는 만큼, 자체 내에 이미 어떤 해결책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집단들 역시 도취에 의해 왜곡될 경우 심각한 문제와 폐단들을 일으킬 수 있긴 하지만, 이들 집단의 심장부에 놓여있는 핵심 가치 자체는 도취적 자기중심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아주 주목할 만한 특성들을 나타내 보인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이들 집단 형성의 동력이 된 그 중심 원리를 탐색하면서 도취적 갈등 상황이 삽입되는 전체 맥락을 드러내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부터 접근해 들어갈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집단적 규모로 발생하는 극적인 현상도 일상적 차원의 심리 경험이 극화되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평범한 현상을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비범한 어떤 원리 이끌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 묘사하게 될 현상들이 결코 허황된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즉 매 순간 기울이는 이 관심 자체에서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자.



012-20260110-005829.jpg 관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출처: pixabay)





1. 두 종류의 집중


도취와 매혹이란 현상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집중 상태이다. 특정 지점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관심에 의해 유발되는 철저히 수동적 형태의 집중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 점으로 관심이 모여든다는 점에서 일종의 ‘집중’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물론 집중에는 이런 형태의 집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관심을 끌어 모으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형태의 집중도 분명 존재한다. 둘 다 집중인 만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 두 종류의 집중은 그 성질과 작용방식 등이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이 두 종류의 집중이 당사자의 정신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가 뚜렷이 부각될 것이다.


그럼 먼저 의식 차원에 미치는 수동 집중의 영향력부터 되짚어보기로 하자. 앞서 매혹과 동조의 형태로 일어나는 수동 집중이 인격의 중심부를 잠재운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수동 집중은 집중 대상을 제외한 의식의 모든 영역에서 관심을 거두어 대상 표면에다 중첩시킴으로써, 당사자의 비판 기능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외부인상에 대한 수용성, 즉 피암시성까지 증대시켜 놓는다.


일단 이 과정을 통해 의식에 대한 통제권이 위임되고 나면, 당사자는 수동집중 대상을 매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부 환경에 휩쓸려 다니면서, 평소 같았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행위조차 서슴지 않게 된다.



002-20251220-011634.jpg 관심을 기울이는 방식에는 능동과 수동, 두 종류가 있다.



이 전체 과정은 최면 상황에서 가장 극적으로 부각된다. 최면술사는 보통 자신과 인접해있는 한 지점으로 피최면자의 관심을 수동 집중시킴으로써 상대의 의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곤 하는데, 이 과정은 결국 상대의 의식을 한 점으로 축소시킨 뒤 그 점에다 자신의 의식을 이어붙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눈을 감고’, ‘긴장을 풀고’, ‘통제를 내려놓으라’는 그 모든 권고도 사실 자신에게 의식의 주도권을 잠시 위임하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피최면자는 이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양자가 동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처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수술을 위해 마취에 응하는 환자처럼, 의식의 통제권을 최면술사에게 위임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의식으로는 교정할 수 없었던 심층 의지의 뒤틀림을 최면술사의 의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정 받는다.



이처럼 수동 집중은 당사자의 전반적인 각성 수준을 저하시킴과 동시에, 외부환경에 대한 의존성을 증대시킴으로써 의식의 자율성까지도 침해를 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이 과정이 그 극한에 이르기까지 중단 없이 계속된다면, 그의 의식은 동물적 무지와 예속의 상태를 거쳐 종국에는 물질성의 암흑으로까지 잠겨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수동 집중이 당사자의 의식을 물질 영역으로 다소간 하강시킨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능동 집중에 대해서는 이와 반대되는 효과를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능동 집중은 각성의 강도와 자율성이란 두 측면 모두에서 수동 집중과 완전히 상반된 특성들을 나타내 보인다.



008-20260110-005829.jpg 수동 집중(그것이 '양성'이든 '음성'이든)은 전반적인 각성 수준을 저하시킴과 동시에 외부 환경에 대한 의존성을 증대시켜 놓는다.



우선, 능동 집중은 집중 대상 주변의 기억 영역을 마비시키기는커녕, 그 대상과 연관된 온갖 기억들을 끌어 모아 한데 융합시킴으로써 대상 속에 내재된 하나의 전체상, 또는 본질을 드러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대상 표면에 중첩되면서 쾌감을 발산하는 대신 대상 속으로 스며들며 일종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것이다.


이 태도는 관심의 노력을 통해 대상의 존재에 참여하면서 기존 자아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일종의 공감 과정으로서, 통상 말하는 이해직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책 읽는 상황을 예로 들어가면서 설명해보기로 하자. 잘 알다시피, 책은 종이 위에 인쇄된 개별적인 문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자들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하나의 상징적인 기호에 불과하지만, 독자의 눈에는 이미 일정한 뜻을 지닌 단어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읽는 독자는, 마치 개별적인 소리들의 연쇄에서 하나의 선율을 감지해 내듯, 각각의 단어가 환기하는 자신의 기억을 연쇄적으로 끌어 모아 융합시킴으로써 책 속에 담긴 의미를 재구성해내게 되는데, 이와 같은 기억의 융합 및 심화 과정에 동원되는 태도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능동 집중이다.


독자는 이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기존 기억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게 되며, 이를 통해 결국 책의 정신, 혹은 저자의 정신 그 자체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마치 책이 표출되어 나온 원천을 향해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다음 화예 계속)



#수동 집중 #능동 집중 #의식의 마비 #의식의 각성 #상승과 하강 #매혹 #최면 #이해 #공감












1권과 2권에서는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는 태도인 도취와 매혹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1) 도취나 매혹과 정반대되는 성질의 관심이 무엇인지 밝히고, 2) 그런 태도를 취할 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다뤄보려 합니다.

이렇게 전체 맥락을 다 드러내놓고 나서 기존의 문제들을 바라보면 갈등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https://brunch.co.kr/@slouu/80

https://brunch.co.kr/@slouu/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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