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자가 증식과 내적 분열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집단의 구성과 개인의 정신 구조가 서로 닮은 꼴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 화에서는 집단 차원의 도취가 집단의 지도자와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뤄보려 합니다.
혹시 낯선 용어가 있다면 첨부된 해설과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이제 집단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도취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이 문제를 해명하다 보면 개인적 차원의 도취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심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양성 도취(쾌감에 중심을 둔 자만)로만 설명을 국한시키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음성 도취(공격성에 중심을 둔 자만)는 초점이 주로 타인에 맞춰져 있는 만큼, 집단과 내부 구성원 간의 관계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음성 도취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사실, 즉 초점을 밖에서 안으로 이동시킬 경우 배후에 잠재되어 있던 양성 도취의 측면이 활성화되어 결국 동일한 관계 양상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란 사실 하나만 기억해 두면 될 것이다.
그럼 먼저 집단적 차원의 도취가 지도자 이외의 일반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일단, 특정 공유표상(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욕망의 대상)을 중심으로 한 도취적 열광의 현장을 하나 떠올려 보기 바란다.
이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아마도 중심부에 놓인 매혹적인 표상을 향해 자신의 전 존재를 내던지다시피 하면서 도취적 황홀감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공유표상을 에워싼 군중이 자신의 관심으로 그 표상을 압박하듯 감싸며 쾌감을 산출해 내는 모습, 이것이 집단적 도취의 전형적 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이 되는 건 공유표상과 거대한 군중 그 자체이며 개별적인 한 개인은 이 집단의 구성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 도취적 군중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뒤바뀐다. 이 집단의 일부를 구성했던 개인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공유표상과 군중에 대한 기억을 벗겨내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며, 이를 통해 군중 현상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공유표상과 그 주위를 에워싼 모호한 군중으로 구성된 작고 매력적인 경험 기억을 하나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해서 공유표상을 ‘내 것’, 즉 자아상징(자력이나 관계형성 능력을 통해 획득된 사회문화적 성과)으로 설정하고 나면, 그는 그 소유물을 달고 다니면서 사방에다 그것을 퍼뜨리기 시작할 것이다. 즉, 그는 주변의 동참을 유도하고 인식을 강요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다닐 것이고, 이를 통해 관심으로 충전된 그 자아상징의 흥분 상태를 적절히 해소해 낼 것이다.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공유표상을 중심으로 배열된 최초의 군중 현장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은 결국 표상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바로 그 공유표상, 즉 자아상징을 군중의 중심부에 삽입해 넣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자아상징으로 관심을 끌어들이면서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개인적 성취를 대상으로 한 도취가 확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대상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당사자 자신의 도취적 관심도 결국은 일종의 ‘심리적 군중’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의 자기 복제 행위는 그 성과물 주위에 형성된 이 모호한 군중에 하나하나 몸을 부여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아무튼, 한 집단에 속한 일반 구성원은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집단의 확장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그가 한 일은 집단의 공유표상을 자기 몫으로 취한 뒤 그것을 향해 주변의 관심을 끌어들임으로써 자기 복제의 충동을 만족시킨 것이 전부지만, 그 자신 역시 집단의 일부인만큼, 집단 자체의 번식에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일시적인 집단, 즉 군중은 주로 구성원들의 이러한 개인적 확장 충동을 집단 증식의 원동력으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집단에 속한 일반 구성원이 그 공유표상에 실린 도취적 힘을 확장 운동에만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표상에 실린 도취적 힘의 일부를 내면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아상을 팽창시키기도 할 것이다. 한 집단의 구성원이 자신의 집단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주로 이 같은 팽창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자아상의 팽창과 관련된 현상은 일반 구성원보다 집단의 지도자에게서 훨씬 뚜렷한 형태로, 더 빈번하게 발견된다. 게다가 지도자가 일으키는 팽창은 그 집단의 구성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팽창과 관련된 문제는 집단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집단의 지도자 역시 공유표상에 대한 집단적 도취의 기억을 끌어들여 자기 것으로 취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도 결국 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기억에 중심을 잡고 밖으로 확장 운동을 해나가기보다 단순히 그 공유표상을 집어삼키기 쉬울 것이다. 한 집단의 지도자인 만큼 공유표상을 외부 세상에 퍼뜨리는 일보다 그 표상과 거기 실린 도취적 관심을 즐기고 향유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공유표상을 통째로 집어삼킴으로써 거기 실린 도취적 힘까지 끌어들일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자아상을 비대하게 팽창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전체 기억 영역이 제한됨과 동시에 제한된 그 영역의 가치가 부풀려지고 나면, 그는 팽창된 자아상을 토대로 행동하면서 자신이 이끄는 집단에 그 도취의 영향력을 각인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우선 자아상의 팽창을 통해 과장된 그의 추구 및 향유 욕구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높아진 기준에 맞는 결실이나 성과를 요구하면서 집단의 구성원들을 몰아세울 것이고, 이를 통해 구성원들의 내면을, 집단적 가치에 몰두하는 사회적 자아와 이 자아에 의해 관심을 박탈당하는 개인적 자아로 양분시켜 놓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개인의 내면이 분열되고 나면 구성원들은 사회적 자아로 개인적 자아를 억누르면서 개인적 고유성과 권리, 개인 생활 같은 가치를 희생시키게 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지도자는 집단 구성원들의 정신뿐만 아니라 집단 자체의 구성까지 둘로 분열시키게 될 것이다. 즉, 그는 기대에 부응하거나 자신에게 동조하는 구성원들을 가까이하고 기대를 저버리거나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구성원들을 배척하면서 집단을 둘로 갈라놓게 될 것이다.
지도자의 내면에 일어난 분열이 구성원들의 내면으로 이전되고, 이것이 다시 집단의 물리적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모든 일이 전개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집단의 본체, 즉 집단의 몸이 분열되는 방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의 정신이 분열되는 모습은 과연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아마 집단의 몸으로부터 집단의 정신을 분리해 내는 일은 한 사람의 몸과 정신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집단의 경우에도 비교적 뚜렷이 식별되는 정신적인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집단 전체의 기억, 즉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집단정신의 분열이 주로 이 역사를 왜곡하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리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팽창을 일으킨 집단의 지도자는 집단에게 유리한 기억을 미화하거나 과장하고 불리한 기억을 축소하거나 억압하는 식으로 집단의 역사를 왜곡하곤 하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분명 그 자신의 내면이 이미 둘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집단의 몸 쪽으로 좀 더 기운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예로는 ‘언론통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아상이 팽창되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결과들이다. 지도자가 배후에 놓인 자아상의 일부를 향해 관심을 중첩시키면서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관심을 박탈해 오면, 그 도취의 영향력이 이런 식으로 집단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아직 도취의 전체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쾌락과 공격성을 양 극단으로 하는 도취의 전체상은 도취가 극에 달한 지점에서 가서야 비로소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 전체 과정을 그 극한까지 한번 밀어붙여보기로 하자. 즉, 배후에 위치한 자아상의 영역이 단순히 제한을 받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 행위자가 위치한 지점까지 꽉 조여진다고 가정해 보기로 하자. 그러면 아마도 억눌린 기억 영역으로부터 철회된 모든 관심이 그 비좁은 영역을 향해 집중되면서 지도자의 자아상을 무지막지할 정도로 부풀려 놓게 될 것이다.
이 정도까지 자아상을 팽창시킨 지도자라면 단순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는 한편으로는 자신을 예찬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정신을 마비시키거나 무수한 여인들과 난교를 벌이면서 무제한적인 쾌락을 만끽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처형하면서 밖으로 공격성을 분출해 낼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를 신격화하거나 우상화하면서 마치 집단 전체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할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폭군, 즉 광기 어린 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집단적 도취의 가장 극적인 모습은 바로 집단정신 전체를 집어삼키다시피 한 이런 광기 어린 군주들을 통해 구현된다.
하지만 물론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집단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머지않아 지위를 박탈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고, 이를 통해 도취적 탐닉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현실적 제제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집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경우라면 어떨까? 아마도 그런 경우라면 그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그 도취적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당하게 될 것이다. 즉, 그는 절대 권력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편집증적 망상을 통해 심리적 차원의 제재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가 사방으로 방출해 낸 공격성은, 마치 하늘로 쏘아 올린 화살이 중력에 이끌리듯, 방향을 틀어 사방으로부터 그를 옥죄기 시작할 것이고, 이를 통해 그를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즉 피해망상 상태에 빠뜨려 놓을 것이다.
물론 그가 심리적 차원까지 완전히 지배한다면 이런 일조차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안으로 조이고 밖으로 밀쳐내는 팽팽한 도취적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공격성에 대한 소유권을 잃지 않는다면, 그 공격성이 뒤집혀 되돌아올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유지한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쨌든 그도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기력이 쇠하거나 병에 걸린 나머지 이 긴장 상태를 지탱하는데 실패하기도 할 것이고, 무지막지한 도취적 쾌감만 누리면서 공격성 방출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할 것이다.
이럴 경우, 그가 지금껏 쏘아 올린 그 모든 공격성은, 마치 방심할 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 빈틈을 뚫고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그에게 도취란 태도의 이면을 강제로 인식시키고야 말 것이다. 도취의 전체적인 모습, 즉 도취 자체의 본성과 그 모든 파급 효과를 이해하라고 강요하기라도 하듯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 현상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스스로 도취를 이미 상당 부분 현실화시켜 놓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그 자신의 공포나 불안도 나름대로 현실적 근거를 지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폭군의 행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주변에 수두룩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뒤집혀 돌아온 자신의 심리적 공격성을 외부의 현실적 대상 위에 덧씌워 그 공격적 성질을 증폭시킨 뒤, 스스로 창조해 낸 그 ‘현실’에 과장된 방식으로 대응하기 쉬울 것이다.
외부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 공격성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해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실제로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편집증적 폭군이 더 난폭해지는 건 주로 이와 같은 사정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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