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종교의 발달: 토템에서 사제왕을 거쳐 인격신으로

집단정신이 취하는 다양한 형태들

by 이정표
지난 화에서는 집단의 몸체가 어떤 식으로 조직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집단의 정신(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이 취하는 다양한 형태와 그 발달 과정에 대해 간단히 다뤄보려 합니다.

다루는 주제의 성격 상 삽입구가 좀 많으니 이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집단 조직화의 배후에 있는 집단정신(유대감, 공동체 의식) 자체는 과연 어떤 발달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일까?


앞서 집단정신이 조상신이나 유일신과 같은 신 관념을 끌어들임으로써 어느 정도 구체화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모호한 정신은 이처럼 그 안에 내포된 관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대상과 결합해 다소 고정되며, 이를 통해 인식 가능한 하나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신적 대상을 향한 숭배와 예배 행위가 가능해지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응결 덕택이다.


하지만 분명 집단정신의 자리에 처음부터 이런 인격신의 관념이 삽입되지는 않을 것이다. 추상적 원리보다 감각적 대상 쪽으로 기우는 것이 원시적 정신의 본성인 만큼, 아마도 처음에는 한층 더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대상이 집단정신의 상징으로 채택될 것이다.


어떤 대상이 삽입될까? 아마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토템, 즉 동물의 상일 것이다. 인간의 직감은 발달이 덜된 이 야만적 상태의 집단정신을 나타내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동물의 상을 활용할 것이다. 집단의 상징으로 더없이 적절할 뿐만 아니라 원시적 정신이란 속성까지도 그대로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특정 동물의 상을 집단정신의 자리에 앉힌 뒤, 마치 그것이 자신들의 신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기 시작할 것이다. 집단정신을 향한 종교적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끌어들인* 그 특정 동물에게까지 퍼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 집단정신에 형체가 부여되는 이 과정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불안의 장 속으로 보다 국한된 형태의 불안 대상이 끌려들어 가는 과정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아래 링크 참고.



019-20251212-013948.jpg 동물의 상은 집단의 상징으로 더없이 적합하다.(출처: pixabay)



이렇게 해서 일단 상징이 확립되고 나면 집단의 구성원들은 주변에서 발견되는 토템 동물들마저 ‘조상의 화현’이나 ‘같은 뿌리를 지닌 동족’ 등으로 여기면서 신성시하게 될 것이다.**


** 에밀 뒤르켐,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하지만 특별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토템 동물이 집단정신의 상징으로 머무는 기간은 그리 길지 못할 것이다. 동물의 상에다 신적 속성을 부여하는 이런 원시적 풍습은 집단 구성원들의 인식이 각성됨에 따라 서서히 극복될 것이고, 또한 부족들 간의 병합으로 집단의 규모가 확장되면 될수록 토템 동물은 집단의 상징으로서의 적절성을 점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집단 전체의 새로운 구심점을 설정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각성의 시기는 사회적 위계가 확립되고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는 시기와 중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집단이 질적으로 고양됨과 동시에 양적으로도 확장되면, 내부 체계 역시 정교하게 조직화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 발달의 이 시기에는 새롭게 등장한 그 강력한 지도자에게 집단정신이 상당 부분 덧씌워지는 일이 벌어지기 쉬울 것이다. 말하자면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한 지도자가 신적인 존재로까지 격상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각종 문헌에 묘사되어 있는 신성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사제왕이 형성되는 방식일 것이다. 이런 왕을 섬기는 원시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왕이 집단의 운명은 물론 그와 긴밀하게 연관된 자연의 운행에 까지 마음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를 경외시하곤 하는데, 그들이 이 정도로 과장된 신념을 품을 수 있는 건, 물론 왕에게 덧씌워진 그 집단정신 때문일 것이다.*


* 프레이저Frazer는 자신의 책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서 이런 신적 왕에 대한 집단 구성원들의 인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제시한다.

“자연은 결정적으로 사제 왕의 인격에 의존했으며, 그가 중심을 이루는 힘의 체계는 매우 미묘하게 균형 잡혀 있었다. 때문에 사제왕이 조금이라도 불규칙한 거동을 하면 곧바로 큰 문제가 발생하여 대지를 요동치게 했다. 이처럼 사제 왕의 사소한 행동에 의해 자연이 큰 피해를 입게 될 정도이니, 그의 죽음이 초래하는 변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

이 글을 보면 신적인 왕을 섬기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그 왕을 집단 자체와 완전히 동일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012-20251212-013947.jpg "사제왕이 조금이라도 불규칙한 거동을 하면 곧바로 큰 문제가 발생하여 대지를 요동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왕이 일종의 절대 권력을 누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획득된 집단적 행동원리의 총체이자 그 정수인 집단정신과 동일시되는 만큼, 개인적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면서 신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게다가 구성원들의 신념대로 그가 정말 집단정신의 구현체라면 절대로 죽거나 다쳐서는 안 되므로, 신변 보호를 위해 마련된 온갖 미신적인 터부 규정에 시달리면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시간이 갈수록 자기 집단의 신념 체계에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와 관련된 상세한 사례는 위의 책 17장에 실린 ‘사제왕의 터부’ 항목 참조.


이는 구성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가 생각만큼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점을 반복해서 확인하게 될 것이고, 또한 그가 힘을 잃고 노쇠해 가는 모습도 어쩔 수 없이 목격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인식을 어떻게든 회피해 보기 위해 절망적으로 합리화 방안을 강구해 낼지도 모르지만,* 그런다 해도 스며드는 의혹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 위의 책 24장, ‘노쇠한 왕의 살해’ 항목 참조. 신성왕이나 사제왕을 섬기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왕에게서 쇠퇴의 증후가 발견되는 즉시 그를 살해한 뒤 그의 영혼을 후계자에게 전이시켰다고 한다.

왕이 병들거나 노쇠하면 “가축들이 병들어 번식을 못하며, 농작물이 밭에서 말라가고, 사람도 질병으로 집단 떼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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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결국 이들은 한 명의 인간에게 집단정신을 덧씌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것을 벗겨내 다른 곳으로, 아마도 이미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추상적 신 관념 등으로 이전시키게 될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머물던 집단정신이 비로소 제자리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토템 동물과 인간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이집트의 동물머리 신들은 대략 이 시점쯤에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 여기 제시한 관점이 종교와 사회를 같은 것으로 취급한 뒤르켐의 것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형성되는 이른바 ‘정태적 종교’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성이 분출되는 통로, 혹은 약한 지반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형태의 원시 종교는 여전히 그 물질성을 여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집단적 습관 체계에 불과하다.

만일 이 지점을 뚫고 솟아나는 정신적인 그 무언가가 없다면 종교는 그 생명력을 상실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잘 준비된 몸체에 혼이 깃들지 않는 것과도 같다.

참으로 정신적인 것에 해당되는 그 두 번째 유형의 종교에 대해서는 3장 후반부에 가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아무튼 하나의 집단이 개인적 정신과 동일한 구성을 갖추게 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일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을 너무 서둘러 훑어본 감이 있긴 하지만, 군중과 조직화된 집단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을 위해서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개인적 차원의 행위자 의식과 자아상에 각각 대응되는 두 측면은 때로는 다소 다른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예컨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체들에서는 실무를 담당하는 사장과 그 배후에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회장 사이의 역할 구분이 뚜렷이 유지되고 있다.

아마 실질적 실권을 쥔 총리와 집단의 상징적 존재에 해당되는 국왕 사이의 구분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동적인 측면과 정적인 측면 사이의 이 같은 분리는 다른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009-20251212-013947.jpg 토템 동물과 인간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이집트의 신격



그런데 사실 집단이 조직화되는데 항상 이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화된 집단은 가끔씩 단번에 형성되기도 한다.


예컨대, 한 사회 집단 내부에 커다란 재난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즉시 국가적 차원의 관심이 쏠릴 것이고 경각심을 느낀 구성원들은 수차례에 걸쳐 규탄 시위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특정 사건 향한 이 집단적 관심 배후에서는 일종의 조직화된 집단에 해당하는 안전 기구의 설립이 서둘러 진행될 것이다. 단 하나의 커다란 충격만으로 조직화된 집단 전체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아마도 이 엄청난 사건을 통해 ‘안전’이란 추상적 가치가 단번에 일깨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의 결과를 쓰라리게 경험하는 동안 품게 된 안전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에, 점진적인 추구와 향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안전이란 가치와 연관된 집단정신의 한 측면을 단번에 형성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형성 방식에 있어 차이가 난다 해도, 이 기구는 일단 형성되고 나면 조직화된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즉, 이 집단은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속적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하면서 앞으로도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전이란 가치를 성취하고 유지해 나갈 것이다. 애초에 재난을 초래한 철저한 방심 상태가 이 새로운 기관을 통해 보완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집단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커다란 난관을 겪은 후 조심스런 성격을 지니게 된 개인의 모습과도 상당히 닮아있다. 이 두 차원에서 일어나는 태도 변화는 그 구조가 너무나도 유사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자연스런 확장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사회 조직을 그 사회의 성격 요인으로 간주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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