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에서 집단으로: 집단의 몸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이 집단 유기화의 원천이다

by 이정표
지난 화에서는 집단정신(유대감, 공동체 의식)이란 게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이 현실 영역에 구현되며 유기적인 조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려보려 합니다.

인간 개인이 자기 자신의 자아상을 유지하고 강화해 나가는 과정(아래 링크)과 비교하며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5. 조직화된 집단 및 원시종교의 발달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집단정신(집단의 '자아상', 또는 공동체 의식)은 기존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아마도 집단이란 것은 이처럼 집단정신의 주기적인 재활성화를 통해 느슨해지던 결속을 반복적으로 다시 조임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집단은 서서히 와해되다가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외관상 비교적 정적으로 보이는 집단도 지속적인 해체와 재결속 과정의 연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집단의 유지 과정에 대한 이 같은 이해는 조직화된 집단의 형성에 대한 실마리까지 함께 던져준다. 집단 유지에 동원되는 재결속과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이행을 뜻하는 조직화는 사실 그리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대감 강화와 조직 형성은 그 발현 형태에 있어서만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집단정신과 조직화된 집단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나아가는지 그 과정을 한번 탐색해 보기로 하자. 본성상 추정에 그칠 수밖에 없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영역이긴 하지만, 기존 자료들에 의지해가며 전체 의미를 더듬다 보면 대략적인 윤곽 정도는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시간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서, 이완된 집단의 재결속 과정을 집단 형성 이전의 무리에다 적용시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집단의 유지가 아닌 생성을 설명하려면 무질서한 무리로부터 최초의 유대감이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014-20251212-013947.jpg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집단적으로 향유하는 과정 속에서 발달된다.(출처: pixabay)



그러니 우선, 맹목적으로 먹잇감을 쫓는 사냥 무리부터 떠올려보기로 하자. 이 무리의 구성원들은 혼자 다니는 개인일 수도, 소규모 가족 집단의 대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유대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리를 이루게 된 건 식욕의 충족이라는 순전히 본능적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아마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이후 각자의 몫을 가지고 제 갈 길을 가려할 것이고, 어쩌면 획득한 그 먹잇감을 독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개인의 본능적 필요가 다른 모든 관심사를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물론 상황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예컨대, 만일 이 무리의 구성원들이 사냥 과정에서 공동 작업의 효율을 실감하거나 희미하게나마 어떤 유대감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들은 차후 그 성과물을 함께 향유하면서 좀 더 강력한 형태의 공동체 의식을 발달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그들은 아마도 한자리에 모여 같은 대상을 집어삼키면서 어떤 일체감을 누릴 것이고, 이 일체감의 경험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인식과 완전히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이 소규모의 축제 군중으로부터 최초의 공동체 의식, 또는 집단정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해서 구성원들 사이에 일체감이 형성되고 나면, 이들은 앞으로도 사냥과 식사 등을 함께 하면서 그 집단정신을 서서히 강화해 나가게 될 것이다.*


* ‘함께 먹는 행위’와 집단적 유대 사이의 연관성은 『토템과 터부』 후반부에 소개된 로버트슨 스미스의 견해 참조. 인용자인 프로이트가 이로부터 이끌어낸 결론 자체는 많은 저자들이 인정하듯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지지만, 집단적 결속력의 근거를 드러내주는 이 ‘공희 향연’의 가설에는 사색할 거리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특히 다음 구절의 상징적 함의를 한번 숙고해 보기 바란다. “이 유대는, 공희 동물의 살과 피 속에 있다가, 공희 향연을 통하여 모든 참가자들에게 골고루 전해지는 이 동물의 생명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003-20251204-012634.jpg 집단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대상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주거, 의복 등과 같은 문화적 산물도 포함된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아마 주거 공간도 함께 공유할 것이다. 즉, 그들은 공동의 노력으로 주거 공간을 확보하거나 건설한 뒤, 그 공간에서 수면 욕구와 안전 욕구 등을 함께 충족시킴으로써 집단정신의 다른 측면에도 영양분을 공급할 것이다. 주거, 혹은 안식처라는 공유표상(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욕망의 대상)을 향해 욕망을 일으켜 의식의 일체성을 형성한 뒤 그 대상을 심리적으로 향유하고 ‘섭취’함으로써 배후에 놓인 집단정신을 살찌우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집단 활동은 차후 옷가지 마련과 도구 제작, 기술 개발 같은 인간 생활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갈 것이고, 이 결실들에 대한 집단적 향유는 집단정신의 각기 다른 측면을 강화함으로써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강화된 집단정신은 차후 공동 기억의 형태로 저장되고 전수되면서 그 집단의 문화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오래도록 지속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아마도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 배후에 배경처럼 드리어진 이 모호한 실체는 공동 향유의 반복을 통해 강력한 힘을 머금게 될 것이고, 이 힘은 현실에서 강화되고 확대된 형태의 유대감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 힘이 공동체 전체의 결속력을 단순히 증대시키는 데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능만 수행하던 유대감은 그 힘이 증대됨에 따라 상호 신뢰상호 이해와 같은 세부 속성들을 파생시킬 것이고, 이렇게 형성된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이해는 다시 집단 내부의 역할 분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치 반복적인 강화를 통해 성질이 뚜렷해진 집단정신이 자신의 유기체적 본성을 집단 내부에 각인시키기라도 하듯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해서 집단이 조직화되고 나면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집단 전체의 보존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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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론 이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끔씩은 개인적 욕망을 좇다가 공공선을 해치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그 욕망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집단의 지도자와 구성원들은 집단의 보존을 위해 개인적 욕망에 제약을 가할 필요성을 감지하고는, 일련의 금기규칙들을 제정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서적이고 직감적인 차원에서나마 일종의 ‘사회 계약’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와 같은 집단적 합의는 집단생활을 가능케 하는 원리와 법칙들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집단정신과 그 구현체를 향한 존경 및 숭배를 통해 유지되고 강화되어 나갈 것이다.


* 이런 금기의 대상에는 집단적 차원의 유대감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될 것이다.

특히나 거의 종교적인 성질을 띨 정도로 강력한 집단적 유대감 발달시킨 초기 원시 집단 내부에서는 개별 구성원들 간의 성적 관계조차 전체 집단 차원의 결속력을 저해하는 위협 요인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남녀 두 구성원 사이의 성적인 관계는 본질상 배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통상 말하는 ‘족외혼’ 제도는 집단적 유대감과 성적 유대감 사이의 이 같은 충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두를 한눈에 포괄해 보면, 마치 끊임없이 강화되는 집단정신이 땅 위의 요소들을 끌어올리며 서서히 몸을 갖추듯이 모든 일이 진행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적인 개인들과 주변의 물리적 사물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며 유기적 조직체를 형성하는 외적 과정이, 집단정신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내적 과정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보면 ‘조직’이란 것도 유대감이란 정신적 원리가 응결되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유기적 조직의 특징인 구성 요소들 간의 조화결집은 유대감의 본질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별다른 반성의 노력 없이도 조직화된 집단을 하나의 생명체처럼 다룰 수 있는 건 주로 이와 같은 사정들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 의식 #유대감 #집단정신 #집단의 조직화 #토템 #터부 #분업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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