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도취의 두 유형: 소요 사태와 우상 숭배

소요 군중과 축제 군중, 향락 군중

by 이정표
군중 심리에 관한 마지막 글입니다. 지난 화에 이어 여기서도 군중의 유형을 나누는 작업을 계속해보려 합니다.
이번 화를 보시면 개인적 차원의 두 도취(양성, 음성)가 집단의 맥락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회색 글씨는 중복이니 이점 미리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시위 집단의 경우를 보면 이 점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보통 시위 집단이라고 하면 현실에 반대하며 저항하는 모습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이런 겉모습의 배후로 눈을 돌리면 억눌린 욕구가 솟아나는 중심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바로 이 공간에 모여 인격의 중심을 잠재운 뒤 평소 억눌러온 욕망을 온몸으로 구현해 내곤 하는데, 이 광경은 꿈속의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표출해내는 본능적 의지의 모습과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꿈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의식적 인격의 중심부가 잠에 빠진 틈을 타 그 아래 짓눌려 있던 욕망이 눈을 뜨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다른 점이 있다면 참여 당사자가 현실의 공간에다 그 욕망을 표출해 낸다는 점인데, 이것도 사실 그다지 본질적 차이는 못된다. 집단이 형성되는 그 중심부는 정말로 꿈속의 공간처럼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일상적 규범과 가치가 무시된다는 점에서 다소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이다.


특히 주변 맥락을 아직 파악 못한 사람의 눈에는 그 광경이 거의 괴이해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공간의 성질 변화가 집단의 전 영역에 걸쳐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을 등진 도취와 열광의 중심부에서는 인격의 공동화를 통한 상상적 형태의 욕구 충족이 일어나겠지만, 현실 인식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주변부에서는 솟아오르는 욕망과 그에 반하는 현실이 충돌을 일으키며 마찰을 빚게 될 것이다.



017-20251128-011834.jpg 집단의 중심부에서 분출된 욕망은 주변의 현실 인식과 충돌하며 투쟁과 저항의 성격을 띠게 된다.(출처: pixabay)



사실 시위 집단이 투쟁과 저항의 성격을 띠는 건 주로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이 집단은 집단적 욕구 충족을 정면으로 방해하는 현실 한복판에다 그 욕구를 쏟아내는 만큼 이처럼 어느 정도는 현실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집단이 현실의 공간을,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굴절시켜 놓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즉,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현실에 삽입된 공동의 이상을 향해 집단적으로 매혹을 일으킴으로써 현실 공간을 배출과 표현의 장으로 뒤바꿔놓는다. 집단의 존재 자체가 억눌렸던 것이 터져 나오는 일종의 분화구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형의 집단을 현실의 한가운데를 뚫고 솟아나는 꿈에 빗댄다 해도 그리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억눌린 욕망에 중심을 둔 이 집단이 항상 순기능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형태의 욕구 표출 행위가 유해한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필요한 목소리를 내던 정상적인 시위 군중에 도취적인 성향이 유입되면, 그 군중은 결국에 가서는 사회를 혼란케 하는 일종의 소요 군중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런 도취 성향은 과연 어떤 식으로 유입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공격성을 통해서이다. 만일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억눌린 욕구의 표출과 무관하게 눈앞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밀쳐내며 그에 수반되는 끌어들임의 쾌감을 누린다면, 그 군중은 도취적 성질 머금으면서 신랄하고 파괴적 성질을 띠게 될 수 있다.



008-20251128-011833.jpg 도취적 공격성이 유입됨에 따라 시위 군중이 소요 군중으로 변질된다.



물론, 앞서 보았듯이, 통상적 시위집단에도 공격성의 측면은 존재한다. 어쨌든 시위라는 것은 억눌려 있던 욕망이 현실을 찢고 솟아나는 과정인 만큼 어느 정도 마찰은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이 소요 군중이 내보이는 공격성은 그 질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 공격성은 도취적 관심을 자기 쪽으로 끌어 모으는 데서 비롯되는 일종의 쾌감이나 힘의 느낌을 누리기 위해 눈앞의 현실을 발판으로 삼는 태도를 그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여기서는 매혹과 도취의 과정이 억눌린 욕망이 아닌 현실을 능동적으로 거부하는 그 추가적인 공격성에 의해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이 두드러진 군중은 비단 양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일반적인 시위 군중과는 구분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축제 군중과 향락 군중


지금까지 군중이란 말의 통상적 의미에 가장 잘 들어맞는 두 유형의 군중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유형의 군중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억눌린 욕구를 그 욕구에 반대하는 현실에 대고 표출해내는 만큼, 이처럼 투쟁과 저항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억눌렸던 것을 분출해내는 집단이라고 해서 항상 이런 성격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공동으로 이룩해낸 성과를 축하하는 축제 집단에서도 억눌린 욕망의 해소라는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축제 집단의 구성원들은 성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억눌러온 향유 욕구를 일시에 분출하면서 정신적 긴장을 해소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는 사실상 공격성이 개입될 여지가 별로 없다. 눈앞의 현실이 욕구 충족을 방해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적어도 이날 하루만큼은, 공동의 성과에 열광하면서 그와 연관된 향유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키도록 허용 받는다.


그렇다면 이 축제 집단에서는 공유표상에 대한 매혹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서도 억눌린 욕망이 표상에 대한 매혹을 촉진시키는 것일까?* 아마도 그런 면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오래도록 억눌려온 욕망이 일시에 해소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집단 내부에 장기간 축적되어온 향유 욕구는 분명 공유 표상에 압력을 가해 그 성과물의 매력을 어느 정도 증대시켜 놓을 것이다.



(*억눌린 욕망에 의해 대상의 매력이 증폭되는 과정은 아래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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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집단의 중심에 놓인 표상은, 시위 집단과는 달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결국 집단적 차원의 추구 행위를 자극하는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표상은 억눌린 욕망이 전부 해소된 이후에도 다소간 반복적으로 구성원들의 관심을 잡아끌면서 추가적으로 욕망을 자극해 놓기 쉬울 것이다.


무게 중심이 욕망에서 표상으로 이동하는 건 이 시점부터이고, 욕망의 성질이 억눌린 욕망에서 부수적인 욕망으로 변하는 것도 바로 이 시점부터이다. 이때부터는 그 자체의 힘만으로 매혹을 일으킨 표상이 그와 연관된 여분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욕망의 향유가 상당부분 과장되는 면이 있다.


시위 군중이 자신들의 공유표상에 반하는 현실을 공격적으로 밀쳐냄으로써 도취적 성질 띠게 된다면, 이 축제 군중은 매혹적 특성을 지닌 공유표상 향해 과하게 관심을 쏟아 부음으로써 도취적 성질을 머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된다면, 그 군중은 일반적인 의미의 축제 군중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질적 특성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다. 즉,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이룩해낸 성과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매혹을 반복할 것이고, 이를 통해 점차 무절제한 향락과 방탕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종종 물질적 탐닉이나 성적 방종, 집단적 차원의 교만 등과 연관되어 제시되는 우상 개념은 아마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도취적으로 변질된 이 군중을 축제 군중과 구분하여 간단하게 ‘향락 군중’이라 부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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