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욕망이 현실과 부딪힐 때
앞서 연재한 4편의 글에서는 군중심리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기본 뼈대는 1, 2화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번 화부터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욕망의 성질에 따라 군중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뤄보려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공유표상(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욕망의 대상)에 대한 매혹과 동조는 그 표상을 하나의 수용 통로처럼 뒤바꿔 놓음으로써 구성원 개개인의 일상적 의식을 일종의 잠재 상태, 또는 수면 상태 속에 빠뜨려버린다.
일단 이런 상황이 조성되면 공유표상과 그 표상을 매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는 집단 구성원들의 본능적 의지와 직접 교감하면서 집단 전체의 행동을 좌우하게 되는데, 이 본능적 의지란 것은 공유표상에 반응하는 집단 전체의 공통된 욕망에 다름 아니므로, 구성원 개인의 고유성이나 개체성은 완전히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표면적 표상과 거기 대응되는 심층적 욕망이 양자 사이에 가로놓인 개별 인격을 가로질러 직접 소통하는 형국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군중이 형성되는 이 과정을 인격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공동화 현상으로 간주할 생각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인격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제 현실만 봐도 집단의 영향을 받는 구성원들이 고유한 자기중심을 잃고 주변 분위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관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공유하는 거대한 주변 인격이 개체 인격을 사실상 흡수해 들이다시피 한다. 따라서 이 집단의 성질이 이 주변 인격, 즉 집단 전체의 욕망과 그 욕망을 이끄는 표상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해도 놀라서는 안 될 것이다.
시위 군중과 소요 군중
그러면 이제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 욕망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하자. 집단적 욕망의 성질에 주목하다 보면 집단의 유형을 나누는 작업은 자연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묻건대, 집단 전체에 공통된 욕망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억눌린 욕망일 것이다. 집단 형성을 통해 표출되는 욕망들은 각 개인의 일상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바로 그 욕망인 경우가 많다. 사실, 일반적 의미의 ‘군중’도 이처럼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현실적 의식의 제약 때문에 평소 억눌려있던 욕망들을 집단의 힘을 빌어 표출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 욕망들을 공유하는 집단 하나를 식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유형의 집단은 기본적으로 억압된 것의 해소에 중점을 두는 표현 중심 집단인 만큼, 무게 중심을 철저히 욕망 쪽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는 것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서 표상에 대한 매혹과 동조가 별 역할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매혹과 동조가 집단 형성의 중심 원리라는 점은 여기서도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표상을 향한 이 관심의 수동 집중 과정이 거의 전적으로 축적된 욕망에 의해 힘을 공급받는다. 표상 자체가 발산하는 매력만으로는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표상은 일상적 의식에 의해 거절당하거나 억눌린 욕망과 연계되어 있는 만큼 그 자체만으로는 좀처럼 관심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욕망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축적된 욕망의 세력은, 마치 밖으로 분출되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듯, 뒤에서 압력을 가해 표상의 매력을 증폭시키며, 이를 통해 매혹의 과정을 강력하게 촉진시켜 놓는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해서 표상을 향한 매혹이 일어나고 나면, 그 욕망의 세력은 이제 의식적 인격의 중심부가 잠에 빠진 틈을 타 자신을 표출해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기서는 오래도록 억눌려온 욕망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인격의 중심을 잠재우기 위해 표상과 공모를 하는 것이다.*
* 표상이 욕망을 이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억눌린 욕망들이 표출되고 충족되려면 앞길을 가로막은 인격의 중심부가 약화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욕망을 끌어당기는 표상이 강화되기도 해야 한다. 매혹은 이 두 요구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그런데 인격의 중심부를 잠재우면서 평소 잠재되어 있던 본능적 인격을 일깨우는 이 과정은, 한밤중에 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 현상인 꿈과도 상당 부분 닮아있다는 인상을 준다. 비록 그 규모는 완전히 다를지라도 기능 자체가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꿈이 일상적 의식의 일방성 때문에 소홀히 다뤄진 의지 활동의 잔재들을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충족시킴으로써 의지의 긴장을 해소하고 치우친 정신의 균형을 바로잡아주듯이, 표현 기능에 중심을 둔 이 집단 역시 일상 현실의 주도적 가치 체계에 의해 억눌린 공동의 욕망을 표출해냄으로써 사회 집단 전체의 내적 압력을 해소시켜 주는 경향이 있다.
결국, 집단 형성 자체가 한 사회 전체의 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마도 시위 집단의 경우를 보면 이 점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보통 시위 집단이라고 하면 현실에 반대하며 저항하는 모습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이런 겉모습의 배후로 눈을 돌리면 억눌린 욕구가 솟아나는 중심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바로 이 공간에 모여 인격의 중심을 잠재운 뒤 평소 억눌러온 욕망을 온몸으로 구현해 내곤 하는데, 이 광경은 꿈속의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표출해 내는 본능적 의지의 모습과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꿈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의식적 인격의 중심부가 잠에 빠진 틈을 타 그 아래 짓눌려 있던 욕망이 눈을 뜨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다른 점이 있다면 참여 당사자가 현실의 공간에다 그 욕망을 표출해 낸다는 점인데, 이것도 사실 그다지 본질적 차이는 못된다. 집단이 형성되는 그 중심부는 정말로 꿈속의 공간처럼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일상적 규범과 가치가 무시된다는 점에서 다소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이다.
특히 주변 맥락을 아직 파악 못한 사람의 눈에는 그 광경이 거의 괴이해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군중의 유형 #꿈의 기능 #시위 군중 #억눌린 욕망 #매혹
개인 사정으로 다음 주는 휴재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말부터 한 주 정도 활동이 중단되니 이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자님, 작가님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기 바랍니다 :-)
https://brunch.co.kr/@slouu/74
https://brunch.co.kr/@slouu/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