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군중의 관계는 최면술사와 피최면자의 관계와 같다
지금까지 매혹에 의해 의식의 태도가 변질되는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욕구 대상을 향한 매혹은 1)외부 자극에 대한 수용성을 높임과 동시에 2)의식의 비판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의식의 주도권을 외부로 이전시켜 놓는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번 화에서는 이 과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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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로써 관심의 수동 집중과 수용성 증대 현상 사이의 연관성은 명백해졌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매혹적 관심을 머금은 공유표상(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욕망의 대상)이 구성원들의 무분별한 수용을 부추길 수 있는 건 그 표상을 중심으로 발산되는 매혹 특유의 쾌감이 주변으로 번져나가 다른 대상에 대한 인식에까지 배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면 관심의 중첩에서 비롯되는 그 쾌감이나 안도감의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당사자가 받아들이는 외부 영향력의 범위도 함께 넓어져야 할 것이다. 느낌의 강도가 높아지면 그 느낌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또한 넓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첩시키는 관심의 양을 늘리려면 기존 의식의 관할 영역에서 그만큼 더 많은 관심을 거둬내야 할 것이다. 중첩에 소용되는 건 박탈해 온 바로 그 관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다 보면 의식의 주도권 이전이 일어나는 방식에 관한 보다 명확한 상을 얻게 되는데, 간단히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기의식의 변방 지역, 즉 매혹과 동조의 대상이 되는 공유표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부분에서 관심을 거둬 그 대상 위에다 중첩시킨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곳에서 발생한 쾌감은 그 표상에 바로 인접한 영역으로 번져나가며 의식의 수용성을 높여놓을 것이고, 관심을 박탈당한 의식의 변방 지역은 그 기능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지역에서 관심을 거둬 공유표상에 중첩시킨다고 해보자. 이 경우, 중첩된 그 관심은 한층 더 먼 곳까지 번져나갈 것이고, 당사자의 의식적 관할 영역은 더 큰 폭으로 좁혀질 것이다.
이제 이 과정을 단절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시켜 보기로 하자. 즉, 자기의식의 가장 변방 지역에서 매혹 대상에 가장 인접한 지역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연쇄적으로 걷어다가 공유표상 위에 중첩시킨다고 해보자. 그러면 마치 공유표상이란 좁은 통로를 통해 의식의 주도권을 주입해 넣는 듯한 상 하나가 완성될 것이다.
당사자 측의 주도권 영역은 점점 더 수축하면서 오그라들지만 반대편의 주도권과 영향력 범위는 계속해서 더 멀리까지 확산되어 나가는 모습, 이것이 바로 매혹과 동조 상황에서 관찰되는 내면 풍경이다.
의식의 주도권 이전 과정은 항상 이렇게 이중적으로 일어난다. 즉, 관심의 박탈에 의한 비판 기능 마비 과정과 관심의 중첩에 의한 수용성 증대 과정은 완전히 동시에 진행되면서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중첩된 관심에 의해 수용성이 증대되어 외부의 인상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와도 비판 기능이 같이 마비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인상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생각조차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과정이 끝까지 진행되어 주도권이 완전히 반대편으로 넘어가버린다면, 당사자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외부 영향력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주도권이 완전히 이전된 이 최종 상태가 최면 상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주변 맥락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 특성 자체가 지극히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주제를 다룬 일부 저자들은 집단심리와 최면현상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그 둘을 거의 같은 것으로 취급한 바 있다. 집단 내에서 개인이 겪는 심리 변화와 최면 상황에서 일어나는 의식 변화를 사실상 같은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면이란 또 무엇일까? 최면이란 것도 결국 최면 당사자의 의식을 한 점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에 불과한 것 아닐까? 분명 그럴 것이다. 당사자의 의식을 한 점에 고정시킨 뒤 나머지 부분을 서서히 잠재워 무비판적 수용의 통로를 형성해 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최면의 본성일 것이다.
아마도 최면을 거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이 점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면술사는 점멸하는 빛, 규칙적인 소리, 진동하는 물체 등으로 관심을 유도하면서 ‘잠이 온다’나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등과 같은 말로 당사자의 수동성을 부추기곤 하는데, 이는 분명 그 대상을 향한 의식의 수동 집중 상태를 유발하기 위한 조처일 것이다.
잠 속으로 빠져들면서 특정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은, 결국 주변 세상에서 관심을 거두어들이되 그 특정 대상을 향해 거두어들이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상은 외부 세상, 특히 최면술사와 접해있는 대상이므로 그리로 관심을 철회한다 해도 세상과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사자는 그 한 점에서만큼은 계속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최면술사는 그 점을 통해 인상들을 불어넣음으로써 당사자의 의지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말하자면 방향을 지시하는 의식과 그 방향대로 따르는 의지의 역할을 최면술사와 최면 당사자가 각각 떠맡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봐도 최면은 거대 자아의 형성, 즉 집단 형성 과정과 완전히 맥을 같이한다. 단 두 사람 간의 관계라는 점 때문에 양자를 동일시하는 것이 망설여질지도 모르지만, 이런 수적인 측면은 사실 본질적인 점이 못된다. 집단 형성 과정에서도 집단 구성원들의 관심으로 충전된 공유 표상이 수많은 구슬을 엮는 끈처럼 작용하면서 집단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면을 집단 형성 과정의 한 극단으로 간주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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