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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군중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의식의 통제권이 외부로 이전되는 이유

by 이정표
지난 화에서는 군중심리의 특성을 간단히 요약해 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와 같은 극적인 변화가 대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알아보려 합니다.

아래 회색 글씨는 중복이니 이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군중으로 변화된 집단들을 떠올리면서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럼 무엇보다도 먼저 군중 전체를 지휘하는 지도자우두머리의 존재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는 집단의 ‘의식’이나 ‘정신’과도 같은 인물로서 전체 집단을 이끌면서 구성원 개개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겉으로만 보면 그가 집단 전체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도자가 전면에 부각되지 않거나 아예 없어 보이는 군중도 많다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군중 역시 군중 현상의 그 모든 특성들을 빠짐없이 다 드러내 보인다. 어쨌든 강력한 지도자가 군중 형성의 필수 요건은 아닌 셈이다. 그러니 지도자를 군중 형성의 매개요인으로 성급하게 단정 짓기보다 구성원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다른 요인에는 무엇이 있는지 좀 더 찾아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군중이 형성되는 곳에는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된 욕망의 대상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공유된 욕망의 대상이란 점에서 앞으로 ‘공유표상’이라 부르게 될 이 요인은 구성원들을 내적으로 결집시키면서 집단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일단 정신적 퇴행과 피암시성이라는 군중의 특성 두 가지가 이 공유표상을 중심으로 발현된다고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도자와 공유표상(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욕망의 대상)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군중형성의 필수 요건이 공유표상 하나뿐이라면 지도자는 그 위에 덧붙여지는 부차적 요인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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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다. 공유표상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서 반드시 군중이 형성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군중이 형성되려면 그 공유표상이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어야 한다. 밖으로 표현되어 집단적 열망을 자극할 때라야 비로소 공유표상이 ‘공유’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적 내용물이 물리 영역으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시공간 상의 특정 지점을 경유할 수밖에 없으므로, 초반부에는 집단의 공유표상이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즉, 군중이 막 구성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공유표상과 관련된 발언을 하는 집단의 일부 구성원들이 다소 번갈아가면서 지도자의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집단이 외적으로 결집하려면 하나의 뚜렷한 물리적 구심점이 있어야만 하는 만큼,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분출되던 공유표상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지점으로 응결되기에 이를 것이다. 집단의 열망이나 욕망을 가슴에 품은 구성원들 중 그 공유표상을 외부 현실에 가장 뚜렷이 구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군중의 지도자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군중의 지도자가 공유표상과 맺는 관계는 어느 모로 보다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이 공유표상과 맺는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건 단지 집단의 공통된 욕망을 가장 설득력 있게 대변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다. 아마 이 역할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누구라도 군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013-20251025-010153.jpg 집단이 공유하는 욕망을 가장 호소력 있게 표현하는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출처: pixabay)



따라서 지도가 아무리 강력해 보이는 경우라 하더라도 집단 결속력의 원천을 지도자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자가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순전히 자신이 제시한 그 공유표상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공동의 관심으로 충전된 이 공유표상의 후광이 없다면, 그는 사실상 구성원들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중 형성의 원리를 다루는 이 시점에서는 군중 지도자의 성격이나 특성 같은 요인들로 관심을 분산시키기보다 군중 형성의 필수 요건인 공유표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집단의 질을 좌우하는 강력한 지도자와 관련된 문제들은 집단의 구성을 해명한 이후에 가서 다루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공유표상을 중심으로 집단이 유기화되는 구체적인 방식을 해명할 차례인 듯하다. 그러니 공유표상이란 이 하나의 요인에만 집중하면서 그 요인을 대하는 군중 구성원들의 태도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보기로 하자.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이 공유표상을 중심으로 집단이 묶이려면, 먼저 집단 구성원들이 그 표상에 공동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어디서든 관심이 만나야 서로 통할 가능성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물론 군중 형성 과정에 개입되는 그 관심은 특정한 긴장감이 동반되는 주의 깊은 관심과는 분명 그 성질 자체가 다르다. 공유표상을 향해 몰려드는 그 관심은 주변의 모든 관심 거둬들이면서 대상을 향해 빨려 들어가다시피 하는 매혹적 관심이다. 군중이 형성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매혹적 영향력을 발산하는 그 공유표상을 향해 휩쓸려 들어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와 같은 관심의 흐름에 동조라도 해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그 표상을 바라보면서도 주의력의 긴장을 놓아 보내지 않는다면, 그는 군중의 일부로 통합될 수 없을 것이다.


주변부의 관심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한 지점을 과잉 긍정하는 이 매혹동조의 과정이야말로 군중으로 변형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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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에 기여하는 다른 요인들은 더 없는 것일까? 그토록 극적이고 복합적인 성질 변화를 촉발시키는 원인이라면 그 수가 여럿이라 해도 놀랄 이유가 조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계속 조사하다 보면, 공유표상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오직 매혹 하나뿐이며, 이 하나의 요인만으로도 군중으로의 성질 변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함 없다는 점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매혹이란 단 하나의 과정 속에 인격 변화에 필요한 그 모든 조건들이 다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매혹이란 이 과정은 구성원들의 정신에 대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길래 그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들을 일순간에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일까? 간단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혹은 구성원들이 평소 보유하던 의식적 통제권을 주체 인격의 외부에다 이전시켜 놓는다.


즉, 공유표상 속으로 빠져드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 표상에 매혹당하는 바로 그 정도만큼 자기의식의 주도권을 외부의 영향력에 위임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혹이란 현상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특수한 기능들을 통해 촉발되는데, 그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비판기능 마비와 수용성 증대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비판기능 마비란, 문자 그대로, 관심 철회에 의해 현실적인 분별 능력이 훼손되는 현상을 말한다. 매혹을 통해 공통된 욕망의 대상인 공유표상 주변부로 의식의 관할 범위가 좁아지면, 의식을 머금지 못한 정신의 다른 영역들은, 마치 의식적 관심이 철회된 신체 부위가 고통 등과 같은 가장 강력한 감각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본래 행사하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수용성 증대란 공유표상을 향한 관심 집중이 그 지점의 수용성을 대폭 증대시켜 놓는 현상을 말한다. 사방에서 끌어들인 관심이 이 한 점으로 중첩되며 그 공유표상을 무지막지하게 긍정하면, 그 지점은, 관심을 박탈당한 정신의 다른 영역들과는 정반대로, 연관된 모든 자극들을 맹목적 받아들이는 열린 초점, 혹은 통로처럼 기능하게 된다.



003-20251011-015315.jpg 비판기능 마비 + 수용성 증대 = 의식의 주도권 위임.



매혹의 두 측면을 구성하는 이 요인들은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외부의 암시적 영향력이 당사자 자신의 의식적 비판 기능을 대신하도록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까 결국, 당사자의 의식이 매혹 대상이란 한 첨점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면서 그 지점에 단단히 묶여있기 때문에, 외부 지도자나 환경의 영향력이 의식의 일상적 비판 기능을 우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런 조건이 조성되고 나면, 누구든 이 열린 초점, 또는 통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집단 구성원들의 행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견해가 이 통로를 통해 집단 전체의 의지로 바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구성원들의 의식 기능이 외부로 이전되는 방식이다. 공유표상에 대한 매혹을 통해 의식적 통제권을 박탈당하고 나면 구성원 개개인은 이처럼 의식의 명령에 복종하는 본능적 의지처럼 변형되어버리고 만다. 말하자면, 군중으로 통합되는 과정상에서 지도자나 주변 환경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식의 역할을,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은 그 의식의 방향대로 흐르는 의지의 역할을 각각 떠맡게 되는 것이다.


아마 군중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느껴지는 것도 군중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이 같은 원초적 역할 분담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수히 다양하고 광범위한 개성을 품고 있던 집단 전체의 관심이 공유표상이란 지극히 협소한 지점으로 수렴되면서 외부의 지도자 원리와 연결될 때 군중이란 거대 자아가 탄생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원리이지만 이 과정은 군중에 휩쓸린 개인이 나타내 보이는 핵심적인 특성들을 통합적인 하나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003-20251025-020706.jpg 지도자는 '의식'의 역할을, 구성원 개개인은 '의지'의 역할을 각각 떠맡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그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든 못하든, 자신이 지닌 의식 기능의 일부를 외부에다 위임하면서 스스로 본능적 의지의 역할을 자처하기 때문에, 정신 기능도 저하되고 암시의 영향을 받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성원들 간의 상호암시전염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집단적 의지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게 암시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의지에게 행동을 명령하는 건 의식만의 고유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의 구성원들이 여전히 의식 지닌 개인이라는 사실과 그들 모두의 내면에 무비판적 수용의 통로처럼 기능하는 공유표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고려해 보면, 군중 구성원이라 해서 무조건 의지의 역할만 수행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즉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군중 형성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군중의 구성원들 역시 공유표상이란 그 통로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집단적 차원의 의식에 해당되는 지도자의 역할에 어느 정도 동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구성원들 간의 상호 암시는 보통 감정표현이나 몸동작 등과 같은 보다 미묘한 언어로 이루어지므로, 암시를 거는 당사자들조차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거의 인식을 못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어쨌든 군중에 속한 개개인은 여전히 군중 내부에 ‘잠재적 지도자’로 머물면서 전염이란 형태로 집단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와 구성원 모두 공유표상과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양자 사이의 역할 분담도 그리 완벽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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