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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취적 쾌감은 자기 증식 충동을 부추긴다

과시욕과 지배 충동의 기원

by 이정표




4. 자신의 강점에 초점을 둘 때 일어나는 일들


이제 이 도취란 태도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행동 양식들을 본격적으로 탐색해 보기로 하자. 도취가 사람의 행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나가다 보면 추상적으로 설명한 도취의 원리가 좀 더 구체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관심의 초점이 당사자 자신에게 맞춰지는 양성 도취의 경우부터 주목해 보면, 여기서도 정체성의 중심이 머물 수 있는 영역이 둘로 나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당사자 자신의 도취적 관심은 자아상징('내 것')에 중심이 잡힐 수도 있고, 그 배후에 놓인 자아상에 중심이 잡힐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경우 당사자는 자신의 자아상징을 자아상으로 흡수해 들였다 다시 끄집어내기를 반복하며 양자 사이를 다소 오고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의 도취적 관심이 두 지점 중 한 곳, 특히 자아상징에 일정기간 머물며 특정한 행동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양자를 임의적으로나마 나눠서 볼 생각이다.



도취적 쾌감의 의미와 자기 증식


그럼 자아상징에 중심이 잡힌 상태에서 유발되는 행동 양식들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일단, 당사자가 정체성의 중심을 자신의 자아상징에 두는 경우에는 그 지점에 축적된 도취적 쾌감에 의해 행위를 자극받게 되리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외부로 표출되어 나오는 행위는 그 행위에 동력을 제공하는 내적 관심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나타내 보이는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관심을 중첩시키는 과정과 거기서 비롯된 쾌감이 의미하는 바를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002-20251010-013737.jpg 도취적 쾌감의 의미.



우선, 대상으로 몰려드는 그 관심이 절대 능동적인 관심이 아니란 점부터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상 위에 중첩되는 이 관심은 대상 전체를 감싸 안으며 고양시키는 포용적 관심, 즉 사랑이 아니라, 대상의 현재 모습만 배타적으로 긍정하는 표면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의 관심이다.


이 관능적 관심, 또는 매혹적 관심은 도취 대상의 주변부에 놓인 환경과 사물들을 외면하거나 밀쳐내는 것은 물론, 시간의 경과에 따른 그 대상의 변화마저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대상을 현재 상태에다 고착시키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간 박제화시키면서 대상의 동일성을 시간상으로 연장시키는 것, 그것이 이 관심의 특징인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획득된 자아상징을 중심으로 도취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당사자가 그 도취의 대상을 향해 이런 배타적 긍정의 성격을 지닌 관심을 집중적으로 퍼붓다시피 한다. 즉, 그는 그 자아상징을 단편적으로 ‘긍정’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단번에, 무지막지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쏟아 부음으로써 대상을 과잉 충전시킨다.


마치 그 도취의 대상의 존재를 한없이, 연쇄적으로 ‘긍정’하기라도 하듯 대상 향해 자신의 관심 중첩시키면서 거기서 비롯되는 쾌감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대상이 과잉 충전된다면 그 대상을 소유한 당사자는 대상의 동일성을 단순히 시간상으로만 연장시키는 것을 너머 공간상으로도 확산시키고자 욕구하게 될 것이다. 자기 혼자서만 품고 있기엔 대상이 너무나도 매혹적이고 가치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003-20251004-015548.jpg 도취적 관심으로 충전된 대상은 자기 복제 충동을 자극한다.(출처: pixabay)



만일 이런 상황이 조성되었는데도 당사자가 그 대상을 자기 안에 담아두려고만 한다면,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그 도취의 대상이 일종의 확장 충동이나 표현 충동의 형태로 그를 압박해 들어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근질거림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도취의 중심부에 놓인 그 대상을 무수히 복제하여 퍼뜨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도취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그 정신 과정에는 일종의 자기 증식, 혹은 자기 복제의 충동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도취 대상 위로 관심 중첩시킬 때 일어나는 그 쾌감은 본성상 무한 반복에의 욕구에 다름 아니며, 실제로도 대상의 존재를 시공간의 양방향으로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사물에 불과할 수도 있는 자아상징을 이렇게 생명체 다루듯 하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현상에 내포된 상징성을 주의 깊게 고려해 본다면 그런 느낌은 얼마든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취 과정에 내포된 이 원리는 실제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아마도 자기 증식 및 자기 복제의 충동이 외부로 발현되어 나오는 그 모습은 ‘강압적 동일화’라는 말로 가장 잘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도취의 대상과 똑같은 것을 외부 현실에 강요하다시피 하는 다소 강제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동일화의 과정을 편의상 인식의 측면과 행위의 측면, 둘로 나눠서 살펴볼 생각이다.



009-20251004-015549.jpg 자기 증식 충동.



먼저 인식의 측면에서 일어나는 동일화란 다름 아닌 자기 과시를 의미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신의 뛰어난 측면에 도취된 사람은 그 면모를 여기저기 드러내 보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자 하는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자신의 자아상징에다 중첩시킴으로써, 도취적 쾌감의 형태로 나타난 자아상징의 연쇄 긍정 과정을 현실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사자는 자신의 자아상징으로 향하게 할 관심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어느 정도 강탈하다시피 하는데, 이 같은 그의 태도에는 도취 특유의 공격성이 이미 어느 정도 배어들어 있다.


하지만 물론 도취적 관심에 내재된 공격성이 이렇게 간접적인 형식으로만 표출되는 건 아니다. 과시 당사자의 자아상징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속성을 지닌 사람은 그 과시 행위에 동반되는 공격성을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자아상징을 중심으로 발산되는 관심이 반대 속성을 밀고 나가면서 그와 같은 속성을 소유한 당사자의 관심을 반대 방향으로 짓이겨 넣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과시 행위를 바라보면서 내면의 의지가 양방향으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일단 이렇게 과시의 과정이 완료되고 나면, 억지로 관객의 역할을 떠맡게 된 주변 사람들의 내면에 상대의 우월성에 동조하는 일종의 부분 의식이 잉태된다는 점이다. 이 부분 의식은 상대방의 뛰어난 특성을 머금고 들어와 당사자 자신과 대치하는 상대 자아의 복제본으로, 당사자의 초라한 면모를 짓누르면서 그를 거의 따라다니다시피 한다.



005-20250922-223145.jpg 대상의 기억이 상대의 인격 속으로 밀어 넣어진다.



마치 우월성을 과시한 상대방이 기억의 형태로 변형된 채 당사자 옆에 붙어 다니는 것과도 같은 형국이 조성되는 것이다.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상대에게 자신의 관심을 헌납한 그 당사자는 자신의 영역 속으로 침투한 그 부분 의식에 짓눌리며 일정 시간 동안 열등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 열등감에 대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이처럼 과시는 도취를 원동력으로 하는 만큼, 도취 대상과 반대되는 성질들을 거부하고 밀쳐내면서 도취 당사자의 자아상징을 사람들의 내면에 강제로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 도취에 내재된 원리 가운데 중첩 및 쾌감의 측면은 자기 증식의 형태로, 공격성의 측면은 밀쳐냄강압의 형태로 각각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구조적인 면에서나 기능적인 면에서나 철저히 성적인 특성을 나타내 보인다.


한편, 행위 측면에서 일어나는 동일화는 통상 모방에의 요구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관계 당사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유대감 있거나 적어도 그와 유사한 형태의 친분 관계를 전제로 관계를 맺는 경우에는, 동일화의 과정이 인식의 측면에 머물지 않고 이처럼 행위 측면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가장 빈번히 발견되는 사례는 특정한 성과나 공적을 이룬 뒤 경솔하게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견해나 가치관 등을 다른 사람에게 다소간 주입해 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같은 자기 증식 충동의 강도는 그들이 자신의 업적을 중심으로 도취를 일으킨 정도를 그대로 반영해 준다.


이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관심의 초점이 상대방의 필요보다는 자아 영역의 확장 쪽에 맞춰져 있는 만큼, 동일화의 시도가 상대 상황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 없이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기 쉽다.



003-20251011-014417.jpg 개념 주입.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건 아니다. 양자 간의 관계가 더 밀접한 경우에는 도취를 일으킨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특정한 행동 원칙들을 부과하는 지점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가르치고자 하는 동일화 욕구가 행동 원칙을 강요하는 일종의 지배 충동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도취 성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부모라면 성공적인 것으로 입증된 자신의 행동 원칙들을 자기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부과하면서 자식의 고유성이나 개성 등을 무시하기 쉬울 것이다.


비록 이런 경우에는 도취적 자기 증식 충동 배후에 진정 어린 관심의 측면이 있는 만큼 도취 특유의 공격성도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도취 성향이 강압과 강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공격성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 입장을 바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만일 아이가 도취에 빠진 나머지 미숙하고 일방적인 추구에만 몰두한다면, 그는 외관상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부모의 개입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자기 부모의 태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측면은 그의 내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시야를 좀 넓혀보면 동일화 요구에 내재된 이 같은 공격성이 한층 더 뚜렷해질 것이다.


예컨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일정 지위에 다다른 강력한 국가들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런 나라들은 주변 국가를 정복해 영토를 확장하거나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자국의 문화를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일을 거듭해 왔는데, 그들이 이런 행위를 한 동기 중에는 집단적 차원의 성과에 대한 도취적 자부심도 분명 포함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 국가의 고유한 가치를 외면하거나 억누르면서까지 자국의 문화와 관습 등을 강요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자기 증식 행위에도 문화 전파의 측면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대를 자신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강제력 행사한 그 측면은 도취에 내재된 공격성이 발현되어 나온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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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해서 당사자의 정체성이 자아상징에 중심을 잡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은 상당 부분 해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밖으로 확산 운동을 일으키는 자아상징의 특성에 주목해 보면, 그것이 새로이 획득된 성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격적으로 확산되어 나가며 외부 현실 속으로 삽입되는 자아상징들 중에는 도취 당사자가 오래전 획득한 뒤 자아상에 저장해두고 있던 기존의 자아상징도 포함된다.


예컨대, 타인이나 타 집단을 상대로 동일화 시도를 벌이는 당사자는 자신의 도취를 직접적으로 자극한 그 성과 외에도, 그 자아상징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된 자신의 태도나 견해, 가치관 등까지 함께 제시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건 물론 자아상징과 함께 배후로 유입된 도취적 관심이 그 자아상에다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배후로 흘러든 도취적 관심이 ‘나’ 관념을 매개로 해서 기존의 자아상징들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잠재 상태로 자아상에 저장되어 있던 그 자아상징들이 외부로 분출되어 나오며 증식운동에 동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자아상징들이 외부로 확산되어 나오는 이 과정은 그 맥락만 다를 뿐 본질에 있어서는 새로 획득된 자아상징의 자기 증식 과정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자아상징을 중심으로 한 자기 증식 현상 다룰 때는 도취적 관심이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자기 복제 #자기 증식 #자기 과시 #성욕 #제국주의 #열등의식












지금부터는 이 도취적 관심이 사람의 행동과 사고, 인격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다뤄보려 합니다.
'내면에서 이런 충동이나 태도가 일어날 때(그것이 양성이든 음성이든) 거기 휩쓸리지 말고 바라보는 태도를 취해보자'는 취지의 글들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slouu/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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