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취적 관심은 개인의 인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난 화에서는 '내 것'(자아상징)에 도취의 초점이 맞춰질 때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도취의 초점이 '나'(자아상)로 이전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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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상의 팽창과 내면의 분열
일단,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자신의 자아상징('내 것')을 자아상으로 흡수해 들일 때는 거기 실려 있던 도취적 관심이 자아상으로 스며들면서 도취의 속성에 상응하는 다양한 효과들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자아상징과 함께 배후로 유입된 도취적 관심이 그 지점에다 자신의 고유한 성질들을 각인시켜 넣는 셈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 도취적 관심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변 여건이나 맥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효과 역시 다소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관심은 자아상에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그 도취적 관심은 당사자의 자아상을 비대하게 팽창시켜 놓는다. 자아상징을 중심으로 응축되어 있던 관심이 외부로 표출되면서 흥분을 해소하는 대신, 안으로 역류하면서 ‘나’라는 일반 관념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밖으로 퍼져나가며 현실을 점령하던 관심이 이제는 거꾸로 솟아오르며 당사자의 주관적 자기 가치 관념을 부풀려 놓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팽창’의 과정을 자아상의 영역이 넓고 유연해지는 ‘확대 및 고양’의 과정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식의 활동 영역을 축소하면서 그 부분을 부풀리는 것, 그것이 팽창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과정을 경험하는 당사자는 자신의 뛰어난 자아상징과 어울리는 자아상의 측면들을 끌어 모아 움켜쥐고, 평범하거나 비루한 나머지 측면들을 기억 영역 밖으로 다소 밀쳐내면서, 자신의 자아상을 둘로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다. 도취에 물든 영역 주변으로 정신을 꽉 조이면서 그 안에 스스로 갇히다시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집착하는 그 팽창된 자아 정체성에 사로잡힌 채 활동의 자유를 크게 제한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취에 빠진 당사자는 이 과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단순히 시야를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우월감과 힘의 느낌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어쩌면 자신이 이런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아예 자각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안온한 만족감 속으로 휘말려든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자각을 했든 못했든, 인격의 전체성이 훼손된 것만은 분명하며, 일단 이렇게 자아상의 영역이 변질되고 나면 당사자의 태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이 같은 자아상의 팽창 현상은 당사자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자아상징들을 재활성화시켜 놓게 될 것이다. 즉, 자아상 팽창에 동원된 도취적 관심은 팽창된 그 자아상 내에 포함된 기존의 자아상징들로 흘러들어 가 당사자의 자기 증식 및 자기 복제의 충동을 광범위하게 자극해 놓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향을 받는 것이 비단 외부로부터 획득된 자아상징들 뿐만은 아니다. 자아상으로 흘러든 그 도취적 관심은 당사자의 인격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치며 당사자의 기본적인 자기표현 방식에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새로이 흘러든 도취적 관심이 자아상을 거쳐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속성들, 즉 선천적 자아상징에까지 영향력 행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당사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말하면서 상대에게 강압적으로 자기 의지를 부과하려는 성향을 나타내 보이곤 하는데, 이는 도취적 관심에 내재된 자기 증식과 자기 확장 성향이 기본적인 언어적, 신체적 표현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여기서 더 나아가 도취적 관심이 신체 전반으로까지 배어든다면, 당사자는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가장 대표적인 ‘자아상징’을 내세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일부 권력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성적 일탈 행위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상 팽창에 수반되는 이 같은 효과들은 도취적 쾌감과 공격성 사이의 연관성을 부각해 준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가치 있다. 그렇지만 사실 자기 증식과 연관된 위 효과들을 자아상 팽창의 본질적인 효과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런 변화들은 팽창된 자아상이 자아상징의 형태로 표현되면서 주변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줄 따름이기 때문이다.
자아상 팽창에서 비롯된 보다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효과를 이해하려면 관계 상황보다는 당사자의 기본 생활 방식 자체에 일어난 변화를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아상의 비대화는 당사자의 일상적 생활 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뒤바꿔 놓는 것일까?
앞서 자아상이 그에 걸맞은 자아상징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향유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고 한 점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러면 자아상의 팽창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아상의 팽창은 그것을 유지하는데 동원되는 두 종류의 욕망을 비대하게 부풀려 놓는다. 정신적 양분의 획득과 관련된 추구욕은 과장된 성취 욕구나 상승 욕구의 형태로, 획득된 양분의 체화와 관련된 향유욕은 감각 자극을 과도하게 요구해 오는 무절제나 탐닉의 형태로 각각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욕망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것으로서,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온갖 종류의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일단 과도하게 팽창된 추구 욕구는 당사자를 심한 압박감 속으로 밀어 넣기 쉬울 것이다. 목적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성취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어쨌든 그 과장된 목표를 현실에다 구현해 내기 위해 자신의 온 힘과 자산을 다 쏟아붓겠지만, 만일 그래도 안 된다면 결국에 가서는 옳지 못한 수단까지 동원하려 들 것이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을 우회하는 수단, 즉 부정한 수단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지나친 향유 욕구나 신체적 욕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장된 자아상을 유지하는데 동원되는 감각 자극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현실성을 상실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당사자라면 아마도 그 비대해진 자아상을 먹이기 위해 호사스런 쾌락 자극에 무분별하게 탐닉하다가 결국 현실적 금기를 넘어서고 말 것이다.
이 두 종류의 문제는 자아상의 팽창이란 단일한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팽창이 일어나 욕망에 힘이 실리면 좋든 싫든 이런 행동들로 떠밀릴 수밖에 없다. 도취에서 비롯되는 자아상의 팽창이 흔히들 말하는 ‘부정’과 ‘부패’의 공동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는 전체 사태의 일면에 불과하다. 이런 태도에 동반되는 또 다른 문제는 당사자가 정말로 필요한 현실적 욕구들을 소홀히 내팽개쳐 버린다는 점이다. 팽창된 자아상에서 비롯된 과도하고 다소 부차적인 욕망들에만 관심을 쏟느라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현실의 요구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이런 자신의 태도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이미 자신의 팽창된 정체성 속으로 완전히 매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기본적 욕망들에 등을 돌린 채 계속해서 기존의 관심사만 추구하려 들 것이고, 이를 통해 의식과 욕망 사이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결핍을 참는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불만족이 심화되어 더 이상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관심을 박탈당한 이 욕망들이 의식의 영역으로 공격적으로 침범해 들어오면서 당사자의 의식적 추구 행위를 정면으로 방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더 이상 소속감이나 일체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의식으로부터 심하게 괴리되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저항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해서 인격이 둘로 분리되고 나면 의식의 세력과 욕망의 세력이 대립하는 일종의 내전 상황이 조성되는데, 이 같은 내적 대치 상태는 당사자가 스스로 그 전체 사태의 본성을 파악할 때라야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 만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욕망을 더 억누르거나 적대시한다면, 내적 긴장이 심화되어 온갖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내적 갈등으로 인한 문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당사자의 의식과 가장 인접한 영역에서는 이 버림받은 욕망들이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인 질병, 특히 흔히들 말하는 ‘신경증’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욕망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절박하게 충족과 해소를 추구하다가 당사자의 의식에 해를 입히고 말 것이다. 의식으로부터 완전히 괴리되어 버린 만큼, 자신의 목적만 추구하면서 주체의 이득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가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등을 진 채 오직 의식의 이익만 추구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한 개인의 외부 영역에서는 팽창된 자아상과 억눌린 욕망 간의 갈등이 당사자와 현실적 생활 영역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불만이나 비난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가 팽창된 자아상을 만족시키느라 애정 욕구나 기본적 안정 욕구 등과 같은 현실적 욕망의 결핍을 감내한다 한다고 해서 그와 그 욕망을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당사자가 정말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소홀히 한 채 자기 욕심만 좇는다고 비난하면서 침해당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당사자와 현실적 필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 버림받은 욕망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 내면에서 일어나던 내적 갈등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인간관계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 심리학자인 칼 융은 개인적 차원의 신경증이 배우자에게 떠넘겨지다시피 한 사례들을 보고한 바 있다. 이 경우 그 배우자가 병에 걸리게 된 건 분명 상대의 일방적 태도에 동조한 나머지 자신의 정당한 욕구들을 억눌렀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계를 계속해서 좀 더 밀고 나가 보기로 하자. 그러면 아마도 버림받은 욕망의 세력들이 무지막지한 규모로 분출되어 나오는 광경 하나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소외당하거나 억압당한 사람들의 집단적 저항이 바로 그것이다. 한 공동체의 집단적 자의식이 팽창하여 관심이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게 되면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은 공동체의 주도적 가치를 보완하는 또 다른 가치를 중심으로 뭉쳐 세력을 확보한 뒤,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기존 세력과 대립하는데, 이 모습은 개인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두 세력 간의 갈등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규모가 어떻든 간에, 팽창된 자아상에 매몰된 상태에는 이 같은 현실의 요청에 공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심이 외부로부터 완전히 철회되다시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취적 개인의 정체성은 쾌감을 발산해 내는 그 중심을 향해 꽉 조여져 있다.
따라서 만일 외부에서 누군가가 그와 같은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기라도 한다면, 그는 상대의 행위를 침해로 간주하고는 끌어 모아 중첩시키는 데 사용하던 힘을 반대로 틀어 밀쳐내며 공격하는데 쏟아 붓기 시작할 것이다. 잠재 상태에 있던 도취의 다른 쪽 극단, 즉 화가 외부 세력의 침해를 당하는 순간 활성화 되어 일종의 자기 보존 기능을 수행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침해가 영속적인 경우라면 어떨까. 침입해 들어온 그 이질적 요인을 밀쳐내는 데만 온통 관심을 쏟게 되지 않을까? 분명 그럴 것이다. 끊임없이 침해를 당하는 상황에서는 아예 쾌락을 등진 채 쉴 새 없이 공격성만 쏟아내게 될 것이다. 도취의 중심이 공격성이나 화 쪽으로 완전히 이전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이 밀쳐냄, 즉 거부와 비판은 도취의 유발 수단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도취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공격성에 가담하는 동시에, 그 태도를 통해 다시 도취를 더 강화하기도 하는 인과의 연쇄 속으로 빠져들기 쉬울 것이다.
도취의 쾌락으로부터 다소 떨어진 외곽 지역에서는 이런 형태의 공격성을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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