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림보 마케터 Oct 15. 2023

나는 왜 늘 불안한가?

나는 늘 그랬다.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에도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의 불만족은 어쩌면 내 부모, 오빠의 삶을 닮고 싶지 않은 몸부림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부모님은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두 분의 학력은 중학교에 그쳤고 그 사실은 내가 한참 컸을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엄마는 꽤 열심히 뉴스를 보거나 공부를 한 덕에 중졸 수준 이상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엄마의 학력을 의심할 일은 없었다. 부모님 또한 고졸이라고 늘 말해왔었다. 


못 배워도 노력하며 살면서 남들 못지않은 지식수준을 갖고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인데, 엄마는 두 분의 학력을 숨기고자 꽤 노력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40대가 되어 생각해 보니 부모님의 학력이 뭐 그렇게 대수롭나 싶지만 엄마는 대부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절대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의 결혼


부모님의 결혼은 그들의 나이대에서 흔했던 중매결혼이었다. 특히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뜻대로 그냥 결혼을 한 경우다. 엄마는 소극적이지만 배움에 열린 사람이었고 반면 아빠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두 분 사이의 지식수준은 살면서 계속 격차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끊임없이 결혼을 후회했으며, 그 후회의 과정이 내 어릴 적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했다. 배우려는 의지가 많지 않았고 타인과의 교류조차 좋아하지 않았던 아빠는 종종 엄마의 무시를 받아야만 했고 엄마는 아빠와의 소통에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그런데 엄마의 답답함이 소통의 어려움에서 시작된 건 아니다. 그 시작은 결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는 성실하고 착하며 집안 또한 꽤 경제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을까. 


친할아버지는 세 번의 결혼을 했다. 아빠는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막내아들. 할아버지는 외도와 재혼을 이어하면서 넉넉했던 살림살이가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 쏟아부은 돈들로 가세는 기울었고 이혼의 과정도 매우 안 좋았다. 그걸 보며 자란 아빠는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다. 




엄마는 예뻤다


엄마는 꽤나 예뻤고 참한 색시였다. 노총각 욜로족으로 살아온 아빠에게 결혼할 준비는 전혀 안돼 있었다. 하지만 엄마를 본 아빠는 욕심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외할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다. 꽤나 부자인양 거짓으로 꾸며낸 프로필로 결혼에 성공했다.


엄마는 20대 초반,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그냥' 결혼했다. 그러라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시집왔다고 했다. 하지만 양말 한 짝 없던 아빠에게 시집온 엄마는 "뭔가 잘못됐다"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결국 살 곳조차 없던 엄마를 가엽게 여긴 외할머니가 단칸방을 해주셨다고 했다. 땡전 한 푼 없이 장가온 아빠는 6살 어리고 예쁜, 그것도 집까지 해오는 엄마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빠 복이긴 하겠지.


그것이 두고두고 원망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