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확히 1년 전에 결혼했다. 나는 이곳에 나의 가족에게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더 이상 글을 잇지 못했다. 정확히는 2년 반 전부터 나는 가족에게서 나를 떼어놓는 연습을 해왔다. 가족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건 아니다. 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뒀다는 이야기이다.
이제와 보니 나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가족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 간절하게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간절함이 나의 가족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게 맞겠다. 철저히 준비했고 고통스럽게 버텼다. 그 결과 나는 누가 봐도 모든 면에서 손색없는 신랑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 벗어날 줄 알았던 건 착오였다. 나는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가족을 만든 건 아닐까 싶다.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은 아슬아슬 외줄타기 중이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부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픈 게 더 심해졌고 오빠는 여전히 세무사 준비한답시고 엄마의 고통이 되고 있다.
4명이 함께 살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혼자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집에 자잘한 돈이 필요할 때, 엄마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항상 지갑을 여는 것으로 부모를 돌봐왔다.
그 때문에 나는 회사를 쉽게 옮기기도 어려웠고 (보험이나 기타 회사에서 나오는 각종 지원 등으로 인하여) 당연히 죽도록 힘들 때조차 꾸역꾸역 회사를 다녀야만 했었다.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타격이 컸기 때문이었다. 자잘한 비용을 대는 것은 물론이고 당연히 매월 고정적으로 생활비를 댔었고 그 비용은 때때로는 내게도 부담이 될 때가 있었다.
엄마는 너무 고맙다고 했지만 나의 생활비가 당연해질 즈음 나는 나의 가족을 만들어 그곳을 벗어났다.
결혼하면서 나는 선을 그었다. 내가 만든 내 가족에게 나의 부모의 아픔까지 떠안아달라고는 하기 싫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락을 할 때마다 엄마는 매일 병원에 다녔고 밥도 못 먹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얼마 전 아빠는 엄마 몰래 “아빠가 너한테 조금의 보탬이 되려고 돈을 주려고 했으나, 엄마가 짜증 냈어. OO이는 충분히 잘 사는데, 굳이 보태줄 필요가 있겠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뭐 도움 받은 적도 없고 나는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다. 항상 중요한 때 엄마는 “너는 알아서 잘 살잖아. 너는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잖아”라고 했다. 그 말들이 너무 상처가 되었다.
도움 따위 받고 싶지도 않지만, 왜 딸한테 늘 그렇게 모질까. 그리고는 그 모정은 아들에게 향해 있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시험 때가 되면 시험공부를 중단하고 오빠의 그림 숙제를 해야 했고 그 외에도 오빠 방학 숙제조차 내가 해야 했다. 오빠는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잘난 아들은 성인이 되고부터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무원시험, 세무사까지 시험을 핑계로 단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곱게 자란 오빠는 스스로 무엇 하나 길을 열지 못했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강하게 큰 나는 홀로 견디고 버티는 것도 곧잘 해냈다.
나는 내가 죽도록 번 돈으로 40대 중반이 된 오빠 뒷바라지에 애를 먹는 엄마를 더 이상 돕고 싶지 않다.
안쓰럽지만, 이젠 내가 더 안쓰럽다. 그래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내 가족을 만들었다. 하지만 철저히 선을 긋은 건 사실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경제권을 합치지 않아 나는 나대로 돈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엄마가 아플 때마다 돈을 보내고 있다. 문득 추석을 보내고 보니 나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돈을 주고 있었다. 신랑이 알게, 또 모르게 나는 돈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벗어나지 못했구나.. 아빠는 말했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너 가족을 챙겨야 한다. 엄마는 아빠와 알아서 산다”
하지만 아빠 또한 20년을 넘게 공부 핑계로 엄마아빠 등골을 휘게 만드는 아들을 위해 노후를 고통스럽게 보내고 싶지 않아 한다. 소일거리나 최소한의 일을 할 수 있지만, 아빠는 철저히 중단을 선언했다.
그 아들을 위해 노후를 바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 이후 엄마의 오빠에 대한 모정이라는 이름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아무도 돕지 않고 그 아들이 이러다 자살이라도 하면 당신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살할 것 같이 나약했다면, 25년을 공부만 하면서 늙은 부모 등골을 빼먹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내 등골까지 빼먹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식 도리는 하겠지만 내 행복이 우선이다. 그것만 절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