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년째 알아가는 중

40대 중년 신혼부부 일상

by 느림보 마케터

오래전 나의 마지막 글에서는 누군가에게 반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돼있다. 그 뒷 이야기를 기억을 더듬어 다시 풀어보고자 한다.


도망치는 사람


마지막 글에도 남겼듯이 난 연애에 있어서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이유인즉슨 데이트 폭력의 경험자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4년 동안의 연애 기간 나는 데이트 폭력이 일상화돼 있었다.


처음엔 가벼운 손찌검 수준이었으나 2년, 3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손찌검이 아닌 말 그대로 폭력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느 때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말다툼이 있었는데,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맞았다. 유도 선수였던 그와 나는 체격 차이가 많이 났고 매번 맞을 때마다 나는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그때도 그랬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난 그대로 꼬꾸라졌고 그런 나의 한쪽 팔을 잡고 길에서 질질 끌고 갔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건 말건 그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간절히 벗어나기를 희망하며 결국 4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고 헤어졌다. 나에 대한 사랑이 도가 지나쳐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이고 사랑은 사랑이다.


그것을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그 이후 연애는 모두 도망치는 사람으로서 살았다. 누구와도 깊은 관계는 되고 싶지 않았고 자그마한 제스처만으로도 나는 겁을 먹었다.


그 뒤로 진지한 연애도 해봤지만 누구와도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나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나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던, 하지만 희망은 놓지 못했던 나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그를 만나자마자 알았다. 결혼할 것이란 걸. 아니, 나는 꼭 그와 결혼하겠다는 결심이 맞겠다.


그때부터 나의 속앓이가 시작되었다. 연락도 별로 없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말도 없고.. 그런 그에게서 나를 향한 어떤 마음도 나는 캐치하지 못한 채 불안했다.


그렇게 그와 사귄 지 딱 1년, 나는 선언했다. "우리 앞으로의 관계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면, 그건 앞으로도 못할 일이다. 그러니 이제 서로의 시간을 붙잡지 말고 놔주자"


그 이후 그는 내게 커플링을 맞추자고 했다. 커플링을 맞추고 다시 시간을 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후에 가족들에게 나의 존재를 공개하고 바로 예식장을 알아보는 수순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커플링을 받고 딱 3개월 만에 나는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서있었다. 내 인생에서 이 사람을 놓친다면, 나는 이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굳은 다짐은 현실이 됐다.



우리는 여전히 알아가는 중


그때는 다 가진 줄 알았던 거 같다. 하지만 결혼하고 보니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몰랐다. 그의 집에 몇 번 드나들었을 때, 소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 질문은 개인적이니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보니, 그는 돈을 아예 쓰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필요하지 않게 되니 안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0년 이상 입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도 별 문제가 없었고 14년 탄 차는 여기저기 고장이 난 상태였다. 그의 집에는 삶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있었다.


가스레인지 후드는 망가졌지만 방치했고 집 인터폰은 디스플레이가 고장나 안 보였지만 그대로 쓰고 있었고 옷방엔..... 옷장 없이 양말과 티와 바지가 같이 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그나마 갖고 있었던 식기류, 이불류도 어머님이 오래전 쓰시던 낡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것을 안 사기도 하지만 버리지도 않아서 이것들을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꽤 싸우기도 했던 거 같다.


지난 1년의 신혼기간 나는 계속 조금씩 집에 낡은 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힘들었고 지쳤고 외로웠던 거 같다. 때때로 울면서 잠들었고 다시 나의 원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난임 치료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신혼생활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난임 병원에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기로 했으나 둘 다 나이가 많은 이유로 난임병원에 가기로 했다. 신랑과 나는 둘 다 아이를 낳기에 무리 없는 상태였기에 희망을 갖고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새벽부터 난임병원 대기줄에 서있다가, 평균 3시간씩 대기, 4분 진료, 그리고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생리주기는 물론이고 과배란의 과정에서 건강도 안 좋아졌고 무엇보다 멘탈이 심각하게 무너졌다.


신혼생활을 즐길 틈도 없었던 것이 당장 이번 주 주말 나의 스케줄조차 계획할 수 없는 1년을 보냈다. 난임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다시 설명을 하겠다.


멘탈이 망가져서 부부상담도 7-8차 정도 받았다. 결혼한 지 불과 6개월쯤 됐을 때의 일이다. 부부생활은 없고 그저 돈 벌고 병원 다니고 자식 도리를 한 게 다였다. 카페 같은 데 둘이 가본 적도 거의 없고 눈 뜨면 병원 가고 주사 맞고 채취하고 이식하고 그 과정의 연속이었다.


아마 내 평생 맞은 주사보다 지난 1년 동안 맞은 주사가 훨씬 많을 것이다. 호르몬 주사와 약을 너무 많이 투입해서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도 아무 일 없단 듯 회사 생활을 해나갔다.


1년을 돌아보니,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모르는구나 생각한다. 여전히 싸우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의 경제 사정을 어떻게 오픈할지도 잘 모르겠다.


나의 아픈 가정사를 나는 어떻게 잘 풀어갈지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모른 채 주어진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척이나 덤덤한 40대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