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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y 08. 2020

4년치 가계부 엑셀로 정리하기

꼭 필요한 만큼만 벌거나 야금야금 저축 빼먹고 살려면 한달예산 얼마?

나는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서 돈을 쓸 때마다 가계부에 기록하고, 매월 말에는 노트에 옮겨 적는다. 다음 달의 예상 지출은 작년 같은 달 자료와 이번 달 소비내용을 나름 분석하여 연필로 적어둔다. 돈을 쓸 때마다 강박적으로 예산에 맞추려고 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아껴 쓴다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크게 예산을 넘지는 않는다.


책도 사고 친구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마음에 거리낌 없이 놀려면 얼마를 책정해야 할지, 상담도 계속 다니고 싶고, 고양이 아플 때랑 인간 아플 때를 대비해서 저축도 적당하게 해 놓으려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야 할지 대략계산이 나온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월급을 보면서 계속 다녀야 할까, 괴롭지만 적당히 버티면서 지내볼까 하는 생각을 매분 매초 하는 직장인으로서 오랜만에 과거의 가계부를 한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어플로 기록한 수입과 지출을 매월 말일에 노트에 쓰고, 매년 연말에 엑셀 파일로 정리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긴 했다. 아마도 2018년 언제까지는 해뒀을 것 같은데 2016년 것만 입력된 파일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2016년부터 써온 공책 가계부와 어플을 보고 엑셀에 4년치 가계부를 입력했다.


얼마를 쓰고 사는지, 얼마를 벌었는지, 지금 얼마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그만두든 계속 다니든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퇴근하자마자 저녁 먹고 계속 입력하고 더하고 빼고 숫자 쳐다보면서 4시간 가까이 작업했다. 월급 받던 시기, 실업급여 받던 시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기, 다시 월급을 받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 나님.


낮에 종합소득세 신고하면서 2019년 귀속 사업소득, 기타소득 원천징수 세액을 환급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느라 작년에 일했던 내용, 받았던 강연료를 보다가 한번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월세처럼 절대 아낄 수 없는 고정비와 도시가스나 관리비처럼 노력하면 조금은 아낄 수 있는 비용, 식비와 문화비처럼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는 생활비로 구분해보고, 저축은 얼마정도 해오고 있는지 지금까지 모은 돈은 얼마인지 이런 거 계산해보고 있으니 너무 집중해서 시간이 훌쩍 갔다.

만약 돈을 벌 수 없다면 꼭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를 가늠할 수도 있고, 어렵지 않게 최소 비용으로 생활하는 것도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일단 숫자 입력하고 합계 보고, 돈이 남는지 부족한지도 보고, 지난 3~4년의 데이터를 보고 있으니 일기장을 다시 보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강연이나 행사가 많이 들어오는 때는 가을 이후이고, 많진 않지만 간간히 청탁 받아 원고를 쓸 수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인간이나 고양이를 위한 가구와 전자제품을 살 때 큰 돈을 쓰고, 자동차 유지에 들어가는 수리비도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지 그 숫자들을 쳐다보고 있기만해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못해도 숫자들을 들여다 보고 있는 건 재밌었다. 음. 카페에서 일할 때는 돈을 이 정도 벌었군. 그땐 카페에서 밥도 커피도 다 해결할 수 있었으니 식비가 참 적게 들었네. 언니랑 같이 살 때 옷은 언니 옷 다 얻어 입고, 처음 독립할 때도 집에 있는 옷이랑 이불을 들고 와서 의류나 침구에는 아직 큰돈을 써본 적이 없는데 소파도 옷장도 사본 사람이니까 이제 이불이랑 옷도 잘 살 수 있겠지. 이런 걸 사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하나. 모르겠다. 계속 다닐 이유를 찾기 위해 오늘 가계부를 정리한 건 아니었다. 순수하게 나와 관련된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회사에선 예산이니 정산이니 너무도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는데 말이지. 역시 사람은 자기 일, 자기 돈 생각할 때나 집중하는 건가. 하여튼 오늘의 기록은 재미있었다. 그거 하느라 11시 반이 넘어버려서 오늘의 일기 지각.


쓰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그걸 들여다보는 거. 그런 걸 내가 참 좋아한다. 브런치에 이렇게 쓰는 글도, 쓰고 나서는 오타도 찾지 않을 만큼 그냥 막 우다다 쓰지만 찬찬히 내가 다시 읽고 또 읽으면서 조회수를 올리는 데 큰 기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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