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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선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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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y 17. 2020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기를, 시간이 흐르기를 바랄뿐

이룬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지금의 삶이 막막하지만

별 거 안하고 종일 누워 지낸 일요일이다. 장보기는 어제 마쳤고 빨래와 청소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하고 버티고 있다. 조금 전 9시 30분쯤에 방바닥을 한 번 쓸고,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 분리수거 버리러 나갔다 왔다. 환기도 잠깐 했다. 하루에 2회 이상 충분히 환기를 하라고 했는데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안 하다가 저녁 나절에 잠깐 창을 열었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면 일기에 쓸 건 없다. 오늘 했던 생각들 중에 하나를 붙들고 깊게 깊게 생각하면 글쓰기의 소재가 생기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9시쯤 눈을 떴지만 계속 자고 싶어서 11시 반까지 누워서 잤고 일어나 어제 먹고 남은 떡볶이를 데워서 먹었다. 만화를 보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봐야할지 몰라서 인스타에서 인스타툰을 검색했다. 그림체와 한두컷의 이야기가 괜찮아 보이는 걸로 주욱 살펴봤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다가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을 따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폴라드인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해서 독일에 살고 있는 분의 일상툰 올어바웃You 를 봤다. ​

http://naver.me/5qO9cql5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영주권 등 삶의 기로에서 하나하나 선택하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나도 외국 나가 살고 싶은데 하면서 부러워하거나 나는 왜 못하고 있나 하고 쭈글이가 되었을까. 지금도 사실 이제 나는 너무 늙어버린건가 하면서 쭈그러든다. 40대가 되었는데도 이룬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지금의 삶이 막막하다.

지금이 우울한 시기여서 그런걸까. 기력과 에너지가 치솟아 뭘 해도 잘 될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들이 이것저것 굉장히 많았던 시기에는 지금과 다른 마음이었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과제들을 해치우면서도 새로운 만남들에 자극받고 마음에 활력이 피어났던 거 같기는 하다. 자신감에 넘쳐서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은 죽지않고 버텨서 그 시기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걸까. 주기적으로 우울하고 괴로운 시기가 찾아오니까 어떻게든 잘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 무사히 지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할 수 없다. 그럴 힘이 없으니까.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회사에서 꼭 해야하는 일을 하고, 다른 이들과 한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코로나 사태로 2달 이상 휴관하던 도서관에서 드디어 도서 반납 알람이 왔다.

공과금을 내고, 책을 반납하고 꼭 지켜야 하는 이런 약속들을 지키면서 살아내야, 살아남아야 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고양이 물과 사료를 주고 화장실을 치운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게 출근을 한다. 도시락도 챙기고 있고 매일 이렇게 일기를 쓰고, 매주 상담을 받는다. 일단은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만으로도 힘겨운 일이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자.

내일 도시락도 3분 카레다. 곁들일 오이, 당근, 양배추, 피망, 양배추를 썰어 통에 담았다. 충분히 훌륭한 도시락을 준비했다. 우울해서 준비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쏟지는 못해서 제품을 먹지만 그래도 신선한 채소를 챙겨 먹는다. 맛있다. 근처에 마음에 차는 식당이 없다. 뭐 멀리까지 차를 타고 나가서 먹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가격대비 만족을 주는 식사가 별로 없다.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그래도 금요일에 외식 나가는 건 좀 기대되는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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