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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y 28. 2020

꾸준한 쓰기만이 하루를 버티고 견디는 힘

우선 쓰고 볼게요


다행인 것은 집에 오면 회사의 고통은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지금보다 상태가 더 심각할 때는 집에 와서 한참을 가만히 있어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나를 분리시킬 수 있었다. 오늘은 집에 오기 전부터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영상을 찍을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회사에서 있었던 기분 나쁜 일쯤은 금방 잊어버렸다. 그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자리에 앉았다.

수개월 전부터 나는 조만간 유튜브를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때가 되면 과외라도 받겠다고 말해왔던 프로 유튜버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드디어 정한 컨셉과 앞으로의 편집 과외에 대해 상담하고 싶어서 오늘 점심시간에 만났다. 그런데 나는 어젯밤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손쉬운 편집법을 찾아냈다. 아이폰 기본 프로그램인 아이무비를 사용해서 해봤더니.... 된다! 된다! 오오오. 그래서 오늘 특별히 물어볼 게 없었다. 그냥 저 잘했죠? 칭찬해주세요, 하는 정도. 선생님께서도 재밌어 하시며 일단 시작해보고 하다보면 구체적인 궁금증이나 원하는 것이 생길 테고, 그때 딱 맞는 과외를 하는 게 낫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게 명확히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다 방법을 찾는다고. 편집법을 찾아낸 나를 칭찬을 해주셨다. (내가 해달라고 보챘다.) 그래도 구체적인 팁들을 몇 가지 알려주셨는데 그걸 반영해서 오늘 촬영 때는 은은한 주황색 조명을 켜봤다. 감성채널에 가까울 거 같으니 형광등보단 따뜻한 느낌이 좋을 거고 타이핑 소리를 집중해서 넣고 싶으면 마이크를 좋은 거 쓰면 좋은데 지금이야 그냥 하고 나중에 그런 점을 염두에 두시라고. 그래서 나는 나름 알고 있는 방법으로 소음을 줄여봤다. 아이폰 살 때 주는 기본 이어폰에 내장된 마이크를 키보드 옆에 두고, 화장지로 살짝 덮어서 마이크의 그 털보숭보숭이 역할을 하게 해봤다. 이것도 어디서 얻어 들은 정보.

어젯밤에 완성한 영상을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어서 트위터에도 올리고 친구들 여럿에게 보냈다. 히히. 내가 제일 뿌듯하고 기쁘지 누가 나만큼 기쁘겠냐만은 그래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나보다. 옆자리 동료, 유튜버 선배는 그냥 자꾸자꾸 내 걸 계속 보는 것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라고, 남한테 보여주는 것 만큼 내가 보고만 있어도 좋더라고. 그 방법을 추천해주었다. 헤헤. 그래서 한참 한참 계속 봤다.

유튜브에 직접 영상을 올리고 채널을 운영해가다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 조금씩 더 확실히 알게 될 것 같다. 조회수에 얼마나 집착하게 될지, 나의 성실을 기록용으로 남기고 싶다는 초심은 어떻게 지켜질지. 솔직히 그냥 기록용이라면 내 컴퓨터에 들어있어도 되는데 굳이 유튜브에 편집해서 올리겠다는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겠지. 나의 이 행위가, 어떻게 보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상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것일 터. 누군가 영상들을 보고 매일매일 쓰는 습관을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거나, 같이 습관을 기르는 마음으로 함께 일기를 쓰겠지. 나아가서는 나의 성실성과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고,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동료 혹은 팬, 독자가 될 수도 있다. 구독자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면 질문을 하든,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서 소통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낮에 만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그쵸, 그렇네요. 그런데 우선 시작해봐야 아는 거니까. 지금은 우선 쓰고 볼게요.

회사 생활이 지겹고, 당장 오늘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가득할 때, 상사들의 숨소리마저도 나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쓰기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일하다 잠깐 담배 피우며 쉬는 사람처럼 쉬는 시간에 나가서 앉아있기도 하지만 그럴 때 보통 일기를 쓴다. 트위터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쓰고, 일기장에도 쓰고. 일기장은 꺼내놓고 손으로 써야하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회사 전용 블로그 페이지를 마련했다. 그에 더해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보는 공유페이지에 새로운 주제로 연재글을 쓰기 시작했다.

괴로움을 잊고자 시작한, 꾸준한 글쓰기가 나에게 하루를 버티고 견디는 힘이 되는 것처럼 쓰기가 치유의 방법인 사람이 어딘가 있겠지. 내가 매일매일 마구 쓴 글이 쌓이는 걸 내가 기뻐하는 것처럼 독자들도 기뻐해주려나. 힘을 받기는 할 것 같다. 한번 해볼까, 생각할 수도 있고 만약 시작한다면 나와 함께 꾸준히 해나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내가 쓰기의 힘을 진심으로 믿게 된 것처럼 누군가도 그렇게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이 찾아낸 자기만의 방법을 긍정할 수도 있을 테지.

쓰고, 찍고, 쌓아두고. 그 작업이 신나고 기대된다. 좋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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